알파고가 이세돌에게 패배한 진짜 이유: AI 시대, 인간다움의 미래는?
혹시 AI가 추천해준 경로로 운전하다가, 문득 ‘이 길이 막히면 어떡하지?’라는 불필요한 걱정을 해본 적 없으신가요?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정보를 분석해 최적의 답을 내놓았는데, 왜 우리 인간은 그 완벽한 답을 의심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며,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고 싶어 할까요?
AI가 그려준 그림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허전함을 느끼거나, AI 챗봇의 완벽한 위로에 오히려 서운함을 느꼈던 경험은요. 이 사소하지만 보편적인 경험들 속에, 어쩌면 AI 시대, 인간다움의 미래는? 이라는 거대한 질문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그 흔한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가 아니라, 오히려 AI라는 가장 완벽한 거울을 통해 우리가 비로소 발견하게 된 ‘인간다움’의 경이로운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류가 기억하는 가장 극적인 맨머신 매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습니다.
“AI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흔한 공포 영화 시나리오
“AI가 결국 의식을 갖고 인간을 지배할 거야.” 마치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이런 상상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 충분히 가질 법한 두려움이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너무 멀리 나아간 ‘호들갑’일 수 있습니다. (이는 앞선 ‘뇌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편에서 나눈 김기현 교수의 통찰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AI는 특정 목표를 인간보다 월등히 잘 수행하도록 설계된 ‘초지능 도구’이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묻거나, 권력욕을 느끼거나, 아침에 일어나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를 고민하는 ‘의식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출처: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Future of Humans, Pew Research Center, 2018). AI는 엄청난 연산 능력으로 ‘최적의 답’을 찾을 뿐, 그 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과 AI의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합니다. AI의 세계가 ‘효율성’과 ‘확률’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간의 세계는 ‘의미’와 ‘이야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2016년, 세기의 대결이었습니다.
알파고의 ‘신의 한 수’와 이세돌의 ‘인간의 한 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4국, 모두가 인간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던 그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흑돌을 쥔 이세돌 9단이 제78수로 중앙에 툭, 하고 끼워 넣은 수. 해설자들은 침묵했고, 알파고는 버그에 걸린 듯 엉뚱한 수를 연발하다 결국 ‘resign’을 선언했습니다.
이 ‘신의 한 수’는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훗날 분석에 따르면, 이세돌의 78수는 알파고의 계산상 나타날 확률이 1만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사실상 ‘버려야 할’ 수였습니다. AI의 관점에서 그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죠. 하지만 이세돌 9단은 수만 번의 패배 확률 속에서 단 하나의 ‘아름다운 승리의 가능성’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그것은 계산이 아닌 직관이었고, 확률이 아닌 집념이었으며, 기계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의지’였습니다.
반면, 2국에서 알파고가 보여준 37수는 어땠을까요? 당시에는 모두를 경악시킨 창의적인 수로 평가받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기보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승리 확률을 아주 약간이라도 높이는 ‘최적의 값’을 계산해낸 결과일 뿐이었습니다(출처: Artificial Intelligence as Structural Estimation, AEA, 2017). 알파고는 바둑의 미학이나 철학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오직 승리라는 목표 함수를 극대화했을 뿐입니다.
이 대결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AI의 지능이 ‘정답을 찾는 능력’이라면, 인간의 지혜는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는 것을요. 알파고는 이기는 법을 알았지만, 이세돌은 왜 이겨야 하는지를 아는 존재였습니다.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의 가치: AI 시대에 우리가 연마해야 할 3가지
그렇다면 AI 시대, 인간다움의 미래는? 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해집니다. 우리는 AI와 계산 능력으로 경쟁할 것이 아니라,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영역을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1.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AI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검색해 답을 줄 수 있지만,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은 던지지 못합니다. 기존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아무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입니다(출처: AI 시대, 인간다움의 시대, 미래에셋증권 매거진).
2. 공감하고 연결하는 능력
AI가 아무리 완벽한 문장으로 위로를 건네도, 우리는 같은 아픔을 겪어본 사람의 서툰 어깨 토닥임에 더 큰 위안을 받습니다. 복잡한 감정의 결을 이해하고, 타인과 깊은 유대를 형성하며, 공동체의 신뢰를 쌓아가는 능력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입니다. AI가 효율화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만남과 대화가 오히려 더 큰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죠.
3. 무목적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능력
AI는 베토벤 스타일로 1초 만에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음악에 스스로 감동하여 눈물 흘리지는 못합니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밤새워 시를 쓰고, 서툰 솜씨로 그림을 그리고, 승패와 상관없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행위. 이처럼 효율성과 목적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활동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행위일 것입니다(출처: AI 시대에 진정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법, 한양대신문).
결론: 가장 완벽한 거울 앞에서
AI 시대, 인간다움의 미래는? 이 질문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할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AI라는 가장 완벽하고 차가운 거울 앞에 서서, 비로소 우리의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이며, 때로는 비효율적이라서 더없이 사랑스러운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AI와 경쟁하여 이기는 세상이 아니라, AI를 최고의 파트너로 삼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하게 되는 세상일 것입니다. AI에게 정답을 찾는 일은 맡겨두고, 우리는 더 멋진 질문을 던지고, 더 뜨겁게 사랑하며, 더 가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죠.
오늘, 계산기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당신의 ‘인간적인’ 선택이나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자주 묻는 질문(FAQ)
Q. AI 때문에 제 일자리가 없어질까 봐 너무 불안해요. 어떻게 해야 하죠?
A.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직업(Job)’이 사라지는 것과 ‘일(Work)’이 사라지는 것은 다르다는 점입니다. AI를 내 업무에 활용하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능력, 즉 창의적 문제 해결, 복합적인 소통, 공감 능력 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AI를 경쟁자가 아닌, 나의 능력을 확장해주는 ‘파트너’로 만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Q. AI가 정말로 소설처럼 의식을 갖게 될 수도 있을까요?
A.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강인공지능(AGI)’, 즉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진 AI의 등장은 매우 먼 이야기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입니다. 현재의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패턴을 인식하는 ‘약인공지능’입니다. 물론 미래는 단정할 수 없지만, 설령 의식을 가진 AI가 등장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의식과 동일한 형태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Q. 다가올 AI 시대를 위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A. 정답을 암기하는 교육보다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코딩 기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로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생각하게 하는 윤리 교육과 인문학 교육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또한, 친구들과 협업하고 갈등을 해결하며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통해, AI가 줄 수 없는 사회성과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