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여름의 시작이 두려워졌습니다. 숨 막히는 아스팔트의 열기,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폭염 경보. 어릴 적 쨍쨍한 햇살 아래서 마냥 즐거웠던 여름은 이제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불안감의 동의어가 된 듯합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불안감을 느끼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신 적 없으신가요?
바로 그 절망의 순간, 우리는 공상 과학 영화 같은 상상을 하곤 합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이산화탄소를 거대한 진공청소기처럼 싹 빨아들여 어딘가에 가둬버릴 수는 없을까? 만약 그런 기술이 있다면, 우리는 기후 위기라는 재앙의 열차에서 뛰어내릴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놀랍게도, 이 상상은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탄소 포집 기술(Carbon Capture Technology)'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는 지금 대기 중의 탄소를 붙잡아 땅속이나 바다 깊은 곳에 격리하려는 거대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과연 인류를 구원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지 모르는 위험한 도박일까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 복잡하고도 매혹적인 기술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보려 합니다.
지구의 가장 오래된 지혜를 빌리다: 강화된 암석 풍화 🌍
우리가 최첨단 기술을 고민하기 전에, 지구 자체가 수억 년 동안 어떻게 기후를 조절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지구는 스스로 탄소를 제거하는, 아주 느리지만 확실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거든요. 바로 ‘암석의 풍화 작용’입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빗물에 녹아 약한 탄산수가 되고, 이 물이 땅의 현무암 같은 규산염 암석에 닿으면 화학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는 안정적인 ‘탄산수소염’이라는 물질로 변해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죠. 그리고 바다에서는 조개나 산호 같은 생물들이 이 물질을 흡수해 자신의 껍데기를 만듭니다. 이 생물들이 죽으면, 그 껍데기는 해저에 쌓여 수천, 수만 년 동안 탄소를 가두는 거대한 무덤이 됩니다(출처: Kurzgesagt).
‘강화된 암석 풍화(Enhanced Rock Weathering)’는 바로 이 자연의 지혜를 ‘속성 과외’ 시키는 기술입니다. 풍화가 잘 일어나는 현무암 등을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든 뒤, 넓은 농경지에 뿌리는 거죠. 암석 가루가 많아질수록, 즉 빗물과 닿는 표면적이 넓어질수록 풍화 작용은 극적으로 빨라집니다. 마치 커피 원두를 통으로 내리는 것보다 곱게 갈아서 내릴 때 훨씬 진한 커피가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매력은 ‘로-테크(Low-tech)’라는 점입니다. 거대한 공장을 짓거나 새로운 물질을 발명할 필요 없이, 기존의 채굴 및 운송 시스템을 활용하면 되니까요. 심지어 현무암 가루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농작물 생산량을 늘리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농경지에 현무암 가루를 살포하면 75년간 무려 2,000억 톤 이상의 탄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하니(출처: Kurzgesagt), 정말 놀랍지 않나요?
⚠️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겠죠. 수십억 톤의 암석을 채굴하고, 빻고, 전 세계로 운송하는 데는 막대한 에너지와 물류 비용이 듭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탄소가 배출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암석에 섞여 있을지 모를 미량의 중금속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첨단 기술의 최전선: 공장과 대기 중에서 탄소를 낚아채는 법 🏭
자연의 방식을 빌리는 것이 ‘전통 농업’이라면, 지금부터 이야기할 기술들은 ‘스마트 팜’에 가깝습니다. 바로 탄소 배출원에서 직접 탄소를 포집하는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과, 이미 대기 중에 퍼져있는 탄소를 직접 잡아내는 DAC(직접 공기 포집) 기술입니다.
1. 굴뚝에서 바로 잡는다: 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CCUS는 화력발전소나 제철소처럼 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공장의 굴뚝에 거대한 ‘화학 필터’를 설치하는 개념입니다. 배출가스가 공기 중으로 퍼지기 전에, 필터가 이산화탄소만 쏙 골라 붙잡는 거죠. 마치 공기청정기가 먼지를 걸러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포집된 탄소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땅속 깊은 곳(고갈된 유전이나 가스전 등)이나 바다 밑에 영구적으로 저장됩니다(출처: 국가녹색기술연구소). 혹은 화학제품이나 건축 자재를 만드는 데 ‘활용’되기도 합니다.
이 기술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 단계에 있으며,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기업들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힙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처럼 앞으로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에 일종의 ‘탄소세’를 물리기 때문에, CCUS는 기업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죠(출처: 한경비즈니스).
2. 대기 중에서 직접 잡는다: DAC (Direct Air Capture)
만약 CCUS가 굴뚝이라는 '범죄 현장'에서 범인을 잡는 기술이라면, DAC는 이미 사회에 퍼져나간 범인을 수색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팬으로 공기를 빨아들인 뒤, 특수한 용매나 필터를 이용해 공기 중에 희박하게 섞여 있는 이산화탄소(약 0.04%)만을 정확히 포집합니다. 화학적으로 이산화탄소와만 달라붙는 ‘케미컬 스펀지’를 상상하시면 쉽습니다.
DAC는 배출원과 상관없이 어디에나 설치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과거에 배출된 탄소까지 제거할 수 있어 ‘탄소 순 제로(Net-Zero)’를 넘어 대기 중 탄소 농도를 실제로 낮추는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를 가능하게 할 유일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죠(출처: 뉴스핌).
그래서, 이 기술이 정말 우리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
자, 여기까지 들으시면 희망이 샘솟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가장 불편하고도 중요한 질문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 기술들은 정말 완벽한 해결책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탄소 포집 기술은 구원투수라기보다는, 9회말 2아웃 만루 상황에 등판한 ‘패전 처리 투수’에 가깝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경기를 이기게 할 수는 없지만, 더 큰 점수 차로 지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인 셈이죠.
가장 큰 문제는 비용과 에너지입니다. 특히 공기 중 0.04%의 희박한 탄소를 잡아내는 DAC 기술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만약 이 에너지를 화석연료로 만든다면, 탄소를 잡기 위해 또 다른 탄소를 배출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됩니다. 기술의 경제성 또한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현재 DAC 기술로 톤당 탄소를 포집하는 비용은 수백 달러에 달하며,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합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도덕적 해이’의 위험입니다. ‘어차피 나중에 탄소 포집 기술로 다 해결할 수 있는데, 지금 당장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퍼지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인 ‘배출량 감축’의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탄소 포집 기술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미 대기 중에는 너무 많은 탄소가 쌓여있고,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탄소 포집 기술은 우리가 지속 가능한 미래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보험’과도 같습니다.
결국 이 기술의 성공은 기술 자체의 발전만큼이나, 우리가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을 연장하는 ‘면죄부’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는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인가. 그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궁극적으로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은 단순히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치와 철학을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늘의 탄소를 땅에 묻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우리의 마음에 심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Q1. 탄소 포집 기술(CCUS)과 직접 공기 포집(DAC)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1. 👉 가장 큰 차이는 ‘어디서’ 탄소를 잡느냐에 있습니다. CCUS는 발전소나 공장 굴뚝처럼 탄소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지점(Point Source)에서 고농도의 탄소를 바로 포집하는 기술입니다. 반면, DAC는 이미 공기 중에 널리 퍼져있는 저농도의 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기술이죠. 굴뚝을 청소하는 것과 방 전체를 청소하는 것의 차이로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Q2. 포집된 탄소는 영원히 안전하게 저장되나요? 유출될 위험은 없나요?
A2. 👉 과학자들은 고갈된 유전이나 심부 암염대수층 같은 깊은 땅속에 탄소를 저장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해당 지층은 수백만 년 동안 석유나 가스를 가두고 있던 구조라 안정성이 검증되었기 때문이죠. 물론, 지진이나 예측 불가능한 지질 활동으로 인한 유출 가능성을 0%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에, 지속적인 모니터링 기술 개발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3. 탄소 포집 기술 비용이 비싸다고 하던데, 왜 계속 개발해야 하나요?
A3. 👉 네, 현재로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첫째, 이미 대기 중에 쌓인 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탄소 네거티브’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술은 규모의 경제와 혁신을 통해 점차 저렴해집니다. 태양광 발전이 초기에 매우 비쌌지만 지금은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 중 하나가 된 것처럼,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는 탄소 포집 기술의 비용을 낮춰줄 것입니다.
Q4. 이 기술만 있으면 기후 변화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건가요?
A4. 👉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탄소 포집 기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여러 처방 중 하나인 ‘필수 전문 의약품’과 같습니다.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처음부터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입니다. 탄소 포집은 이미 배출된 탄소를 처리하고, 감축이 어려운 산업 분야를 돕는 보조적인, 그러나 꼭 필요한 역할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