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제 했던 거짓말, 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가
혹시 어제, 또는 바로 오늘 아침에 했던 ‘사소한 거짓말’ 하나가 마음에 남아 있진 않으신가요? "아, 못 봤네. 지금 확인했어"라며 슬쩍 넘긴 메시지나, 영혼 없이 건넸던 "그 머리 스타일, 너무 잘 어울린다!" 같은 칭찬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약 8명은 하루에 한 번 이상 거짓말을 한다고 답했습니다(출처: 헤이폴, 2021). 이쯤 되면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가 아니라 ‘호모 멘다키우스(거짓말하는 인간)’가 아닐까 싶을 정도죠.
우리는 왜 이토록 능숙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진실을 비트는 걸까요? 단순히 우리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라서? 오늘 저는 당신을 거짓말이라는 안개 자욱한 숲으로 안내하려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거짓말의 진짜 이유를 파헤치고, 어쩌면 우리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지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사람들의 말을 예전처럼 듣지 못할 겁니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듣게 될 테니까요.
“괜찮아, 다 잘될 거야” : 거짓말의 달콤한 속삭임, 그 진짜 이유
우리는 흔히 거짓말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손가락질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거짓말은 생존과 욕망, 그리고 관계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가장 흔한 이유는 바로 ‘자기 보호’입니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쏟아질 비난이 두려워, 혹은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우리는 본능적으로 방어벽을 칩니다. “차가 너무 막혀서 늦었다”는 말은, 사실 “늦잠을 잤다”는 진실보다 훨씬 안전하게 나를 지켜주죠. 이것은 원시시대에 포식자를 피해 몸을 숨기던 우리 조상들의 생존 본능이 현대적으로 진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익 추구’입니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조금 부풀리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경우죠. 이건 마치 게임에서 더 좋은 아이템을 얻으려고 약간의 ‘꼼수’를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롭고, 또 가장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명한 거짓말 탐지 전문가 파멜라 마이어(Pamela Meyer)는 그녀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거짓말은 우리가 누구인지(현실)와 우리가 누구이길 바라는지(이상)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더 유능한 직원, 더 다정한 연인, 더 근사한 친구가 되기를 꿈꾸죠. 하지만 현실의 나는 종종 실수하고, 부족하며, 초라합니다. 이때 거짓말은 그 틈을 메워주는 ‘심리적 필러’ 역할을 합니다. "그 어려운 프로젝트, 제가 해냈습니다"라는 말 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나의 욕망'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말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환상, 그리고 결핍이 빚어낸 복잡한 예술 작품인 셈입니다.
거짓말은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다 : ‘공범’이 된 우리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봐야 합니다. 당신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을 진실 하나를 공개하죠. 거짓말은 결코 혼자서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파멜라 마이어는 거짓말을 ‘협력적 행위(a cooperative act)’라고 정의합니다. 거짓말은 그것을 내뱉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 힘은, 듣는 사람이 그 거짓말을 ‘믿어주기로 동의’할 때 비로소 발생합니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속았다면, 그 이면에는 당신이 그 거짓말을 받아들이기로 ‘동의’한 과정이 숨어있다는 뜻입니다. 왜 우리는 명백한 거짓말에 기꺼이 공범이 되어줄까요?
전설적인 사기꾼 헨리 오버랜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사람은 당신이 갈망하는 것을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문장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속는 이유는, 상대방의 거짓말이 '내가 듣고 싶었던 말'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 "당신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 "이 투자는 100% 안전하며, 한 달 안에 수익률 200%를 보장합니다." (빠른 성공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욕망이 클수록, 그 욕망을 채워주는 달콤한 거짓말을 판별하는 '이성의 필터'는 쉽게 고장 나버립니다. 결국 우리는 거짓말에 속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 눈을 감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 과학이 밝혀낸 거짓말의 신호
그렇다면 이 교묘한 거짓말의 그물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요? 다행히도, 우리의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몸은 생각보다 정직합니다. 수많은 연구들은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미세한 비언어적 신호들을 밝혀냈습니다(한국심리학회지, 2017).
잠깐, 여기서 10초짜리 ‘상상 실험’ 하나 해볼까요? 친구가 당신의 새로운 옷을 보며 "와, 진짜 예쁘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어색합니다. 왜일까요?
1. 말과 행동의 불일치: "응, 좋아"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미세하게 가로젓고 있진 않나요? 긍정과 부인의 신호가 충돌하는 것은 거짓말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2. 얼어붙은 상체와 가짜 미소: 우리는 거짓말쟁이가 안절부절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들키지 않으려 상체를 뻣뻣하게 굳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입꼬리는 올라가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가짜 미소'는 쉽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진짜 기쁨과 즐거움은 눈가의 '까마귀 발' 주름에서 나타나기 때문이죠. (물론, 보톡스를 너무 많이 맞았다면 예외입니다만.)
3. 거리두는 언어와 수식어: 빌 클린턴이 "나는 '그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모니카'라는 이름 대신 '그 여자(that woman)'라는 표현을 쓰며 심리적 거리를 두었습니다. 또한 "솔직히 말해서", "정직하게 말하자면" 같은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 역시, 역설적으로 '나는 지금부터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런 신호 하나하나가 그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단정하는 증거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단서들이 여러 개, 마치 별자리처럼 동시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잠시 멈추고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저 말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결론: 거짓말의 안개를 걷고, 진실한 관계를 향하여
우리는 오늘 거짓말이라는 복잡한 미로를 탐험했습니다. 거짓말은 단순히 나쁜 행동이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본능이자,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며, 때로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 되는 사회적 연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두가 폴리그래프(거짓말 탐지기)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더 나은 ‘관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뿐만 아니라 그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 말 너머에 숨겨진 욕망을 읽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어떤 결핍을 느끼고 있는지 깨달을 때, 우리는 거짓말의 달콤한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을 가질 수 있습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거짓의 이유를 이해하고 진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세상은 조금 더 투명해지고, 우리의 관계는 한 뼘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Q1. 소위 '하얀 거짓말(선의의 거짓말)'도 나쁜 건가요?
A1. 목적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주거나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거짓말은 사회적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결국 더 큰 오해를 낳거나,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앗아간다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은 상황과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Q2.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건 병인가요?
A2. 심리학에서는 특별한 이득 없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병적 허언증(Pathological Lying)'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한 나쁜 버릇을 넘어,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나 낮은 자존감 등 깊은 심리적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주변에 이런 분이 있다면 비난하기보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도록 권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Q3. 아이가 자꾸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A3. 아이의 거짓말은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습니다. 거짓말 자체를 심하게 꾸짖기보다는,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 이유(예: 혼날까 봐 두려워서, 관심을 받고 싶어서)를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실을 말했을 때 더 큰 칭찬과 지지를 보여줌으로써, 정직함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배우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