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독 한국인은 돈에 집착할까? (부제: 당신의 지갑에도 '불안'이 살고 있나요?)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SNS에서 본 해외여행 사진, 나보다 먼저 집을 장만한 동기의 소식에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 말입니다. 축하해야 마땅한 일인데, 왜 조바심과 불안이 먼저 고개를 들까요? 마치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 통장 잔고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성적표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우리 사회는 유독 돈에 민감합니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대사가 유행처럼 번지다가도, 현실에서는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다"는 냉소적인 자조가 뒤따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돈에 울고 웃는 걸까요? 단순히 개인의 욕심 문제일까요?

만약 그렇다고 생각하셨다면, 오늘 이 글을 통해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이 글은 당신의 자책감을 덜어주고, 우리 마음속 깊이 자리한 돈의 정체, 그 거대한 불안의 뿌리를 함께 파헤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 이야기가 아닌,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 설명서입니다.

🧐 "한국인은 원래 욕심 많다?"라는 위험한 착각

우선 냉정한 사실 하나를 마주해 봅시다. 한국인의 유별난 돈 사랑은 단순한 ‘느낌’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전 세계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국가가 ‘가족’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를 1위로 꼽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습니다(출처: Pew Research Center, 2021).

이쯤 되면 "역시 한국인은 속물적이야"라고 혀를 차는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만요.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입니다. 이 현상은 개인의 탐욕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남긴 깊은 ‘흉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마치 큰 수술을 겪고 난 사람이 건강 염려증에 시달리듯, 우리 사회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으며 ‘돈’이라는 강력한 심리적 진통제에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DNA에 새겨진 상처, 돈과 불안의 역사

상상해 보세요.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이 땅에는 엄격한 신분제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모든 것을 쓸어버렸습니다. 양반도, 상놈도 잿더미 위에서는 평등했습니다. 기존의 모든 가치와 질서가 무너진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야 했을까요?

바로 ‘돈’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숨 가쁘게 이어진 산업화 과정에서 어제의 농부가 오늘의 공장주가 되고, 맨주먹의 개인이 빌딩을 올리는 신화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돈은 과거의 신분을 대체하는 가장 확실하고 새로운 계급장이 되었습니다. 나의 배경, 학식, 인품을 증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내가 가진 돈은 즉각적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주었죠. 건국대학교 김석 교수가 지적했듯, 과거에는 명예, 부, 권력이 분리된 가치였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돈이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한 ‘마스터키’가 되어버린 것입니다(참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9).

여기에 또 하나의 심리적 기제가 작동합니다.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막아주는 ‘심리적 방패’ 역할을 합니다.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돈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높은 자존감과 삶의 만족도와 연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참고: 「돈의 경제적 의미와 심리적 의미」, 이윤형). 즉, 통장에 쌓이는 잔고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나는 어떤 위기가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의 확신이자 안도감인 셈입니다. 튼튼한 사회 안전망이 부재하고 각자도생의 경쟁이 치열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돈에 대한 심리적 의존은 강박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불안해서 돈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 돈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사는 법: 3가지 관점 전환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돈의 그림자 아래서 살아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했다면, 이제는 관점을 전환할 차례입니다. 돈의 노예가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3가지 생각의 전환을 제안합니다.

1. '상대적 서열'에서 '절대적 가치'로 기준을 옮겨오세요.
   우리를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비교’입니다. "저 사람은 저만큼 버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이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됩니다. 이제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려야 합니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남들이 정해놓은 ‘한국형 중산층’(30평대 아파트, 중형 세단...)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행복 기준을 세우는 것이 그 첫걸음입니다.
2. '금융 지식'을 넘어 '금융 철학'을 고민하세요.
   어떻게 돈을 벌고 불릴지에 대한 ‘금융 지식’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정작 ‘이 돈을 왜 벌어야 하는지, 어떻게 쓸 때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지’에 대한 ‘금융 철학’은 부재한 경우가 많습니다. 돈은 목적이 아닌 도구일 뿐입니다. 이 도구를 이용해 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고 싶은지(안정, 자유, 경험, 성장 등)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나만의 철학이 생길 때, 우리는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3. '보이지 않는 자산'에 투자하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의식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끈끈한 인간관계,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 건강한 신체와 정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지적 호기심이야말로 진짜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튼튼한 자산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자산’들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세요.

✨ 마치며: 당신의 삶은 얼마짜리인가요?

이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한국인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 그 뿌리 깊은 불안의 정체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셨나요?

우리의 돈에 대한 집착은 개인의 나약함이나 탐욕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급격한 근대화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이제 그 상처를 똑바로 마주하고, 스스로를 연민하며, 새로운 기준을 세워나갈 때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결코 통장 잔고로 환산될 수 없습니다. 오늘 저녁, 내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돈을 넘어선 ‘나의 진짜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차분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