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원래 네덜란드였다? '빅애플'의 진짜 시작, 뉴암스테르담 이야기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이 원래 '뉴암스테르담'이라는 네덜란드 무역 도시였다는 사실, 아시나요? 비버 가죽을 좇던 상인들부터 월스트리트의 진짜 기원, 그리고 총성 없이 도시의 주인이 바뀐 그날의 이야기까지. '빅애플'에 숨겨진 흥미로운 역사를 탐험합니다."
뉴욕(New York). 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자유의 여신상, 타임스퀘어의 화려한 네온사인, 센트럴 파크의 여유, 그리고 끝없이 솟은 마천루의 숲. 뉴욕은 명실상부한 현대 문명의 아이콘이자, 전 세계인들의 꿈이 모이는 '기회의 도시'입니다. 저 역시 스크린 속 뉴욕을 보며 언젠가 저곳을 거닐어 보리라 다짐하곤 했죠.
그런데 만약, 이토록 상징적인 도시의 첫 이름이 '뉴욕'이 아니었다면 어떨까요? 심지어 미국의 건국 이념인 자유나 독립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주 현실적인 '돈' 문제로 세워진 네덜란드인의 도시였다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잠시 화려한 '빅애플'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시작, 뉴욕의 원래 이름, 뉴암스테르담을 아시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 보려 합니다.
모든 것은 '비버 가죽'에서 시작되었다 beaver
1609년, 영국인 탐험가 헨리 허드슨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의뢰를 받아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아시아 항로를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허드슨 강을 따라 북미 대륙의 풍요로운 자연을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그곳에서 유럽 귀족들을 열광시킬 '황금'을 찾아냅니다. 바로 고급 모피, 특히 비버(beaver) 가죽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비버 가죽으로 만든 펠트 모자가 최고의 사치품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 '모피 러시'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 서인도회사(WIC)가 주축이 되어 1624년, 허드슨 강 하구의 맨해튼 섬 남쪽에 교역을 위한 정착지를 세우니, 이것이 바로 '뉴암스테르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모피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벽으로 둘러싸인 무역 도시: 뉴암스테르담의 탄생 🧱
1626년, 네덜란드의 총독 페터 미노이트는 원주민 레나페족에게 옷감, 도끼, 장신구 등 약 60길더(오늘날 약 1,000달러) 상당의 물품을 주고 맨해튼 섬의 소유권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이는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던 원주민들의 입장에선 '사용 허가'에 가까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죠(출처: 위키백과).
이렇게 시작된 뉴암스테르담은 종교적 이상향을 꿈꿨던 영국의 청교도 정착촌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오직 '상업'을 위해 세워진 도시답게, 이곳은 처음부터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뒤섞인 혼란스럽지만 활기 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돈을 벌 기회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던 것이죠.
💡 통념 뒤집기: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진짜 기원
오늘날 세계 금융의 심장인 '월스트리트'는 이름 그대로 실제로 '벽(Wall)'이 있던 거리였습니다. 1653년, 네덜란드 정착민들은 북쪽의 영국 식민지와 원주민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정착지 북쪽 경계에 흙과 나무로 된 약 4미터 높이의 방어벽을 세웠습니다. 이 벽이 있던 자리가 바로 오늘날의 월스트리트입니다.
총성 없이 함락된 도시: 뉴욕이 된 뉴암스테르담 🗽
우리가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듯,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와 영국의 해상 패권 경쟁은 극에 달했습니다. 마침내 1664년 8월,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동생인 요크 공(Duke of York)이 보낸 4척의 영국 함대가 뉴암스테르담 항구에 나타납니다.
당시 뉴암스테르담의 총독이었던 외다리 '피터 스타이베선트'는 결사항전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시민들은 그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대부분 상인이었던 그들은 전투로 인해 자신들의 재산과 무역 기반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았죠. 게다가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시민들의 저항 의지 부족과 현실적인 판단 아래, 스타이베선트는 총 한 발 쏘지 못하고 영국에 도시를 넘겨주게 됩니다.
도시는 새로운 주인이 된 '요크 공'의 이름을 따 '뉴욕(New York)'으로 개명되었습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세계적인 도시의 운명이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뉴욕에 새겨진 네덜란드의 흔적들 🌷
비록 도시의 이름과 지배자는 바뀌었지만, 네덜란드가 남긴 유산은 뉴욕 곳곳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뉴욕의 상징적인 지명 상당수가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했죠.
- 브루클린(Brooklyn): 네덜란드의 도시 '브뢰컬런(Breukelen)'에서 유래
- 할렘(Harlem): 네덜란드의 도시 '하를럼(Haarlem)'에서 유래
-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 토끼가 많아 붙여진 '코네인 에일란트(Konijnen Eiland, 토끼 섬)'에서 유래
무엇보다 중요한 유산은 바로 뉴욕의 '정신'입니다. 출신 배경을 따지지 않는 실용주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관용, 그리고 치열한 상업적 경쟁과 활기. 이 모든 것은 뉴욕의 원래 이름, 뉴암스테르담 시절부터 이 도시의 DNA에 깊이 각인된 것들입니다. 어쩌면 뉴욕이 오늘날 세계의 수도가 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힘은, 바로 이 네덜란드적인 유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여러분은 뉴욕을 볼 때, 단순히 미국의 상징이 아닌, 비버 가죽을 좇던 네덜란드 상인들의 활기와 총성 없이 주인이 바뀌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함께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이면을 보여주며 우리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그 도시의 옛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