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의 눈에게 배신당한 기분을 느껴본 적 있나요?
여기 있는 그림을 잠시만 봐주시겠어요? 세 명의 남자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질문은 아주 간단합니다. 인쇄된 그림 위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가장 왼쪽에 있는 남자보다 더 큰가요?
아마 십중팔구는 "당연히 오른쪽 남자가 크지!"라고 즉시 대답하셨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우리의 눈과 직관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자를 가지고 직접 재어보면,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림에 그려진 세 남자의 크기는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눈속임이나 착시 현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근본적인 작동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비밀의 창문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 창문을 통해 우리는 왜 그토록 자주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스스로를 속이는지 그 원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범인은 바로 '게으른 뇌'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꽤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여러 정보를 종합하고 신중하게 최선의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죠. 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우리의 이런 믿음이 사실은 아주 멋진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방금 우리가 경험한 착시 현상의 진짜 범인은, 바로 우리 뇌의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게으른' 작동 방식에 있습니다.
뇌의 절대 원칙: 질문을 바꿔치기하라!
카너먼은 우리가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에 직면했을 때, 뇌는 그 질문에 직접 답하려 애쓰는 대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훨씬 더 대답하기 쉬운 질문으로 '바꿔치기(Substitution)'해서 답해버린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질문 대체 휴리스틱'의 핵심입니다.
위의 이미지 사례를 다시 볼까요?
- 우리가 받은 진짜 질문 (어려운 질문): "종이 위에 인쇄된 2차원 이미지의 실제 길이는 어떠한가?"
- 뇌가 바꿔치기한 질문 (쉬운 질문): "저 3차원 공간에 서 있는 세 사람의 실제 키는 어떠한가?"
우리의 뇌는 원근법으로 그려진 복도를 보는 순간, 그림을 2D 정보가 아닌 3D 공간으로 자동 해석해버립니다. 그리고 3D 공간에서는 멀리 있는 사람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죠. 뇌는 이 손쉬운 답을 재빨리 찾아낸 뒤, 원래의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인 것처럼 우리에게 제시한 것입니다. 우리는 질문이 바뀐 줄도 모른 채, 그럴듯한 답에 속아 넘어간 셈입니다.
우리 머릿속 두 명의 배우: 시스템 1과 시스템 2
이런 어처구니없는 바꿔치기는 왜 일어나는 걸까요? 카너먼은 우리의 정신이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명의 배우, 즉 '시스템 1'과 '시스템 2'에 의해 운영된다고 설명합니다.
시스템 1 (직관의 배우): 충동적이고, 빠르며, 감정적입니다. 거의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오토파일럿'과 같습니다. 배고픔을 느끼고, 큰 소리에 놀라며, 2+2=4를 즉시 계산해내는 것이 바로 시스템 1의 역할입니다.
시스템 2 (이성의 배우): 신중하고, 느리며, 논리적입니다. 복잡한 계산(17x24 같은)을 하거나, 여러 대안을 비교 분석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의식적인 파일럿'입니다. 하지만 시스템 2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아주 게으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일상에서 '게으른 감독'인 시스템 2가 '열정적인 주연 배우'인 시스템 1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시스템 1이 질문을 교묘하게 바꿔치기해서 그럴듯한 답을 가져와도, 시스템 2는 굳이 힘들게 검토하려 하지 않고 "음, 좋은 것 같군. 통과!"를 외쳐버리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카너먼 시스템1 오류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당신의 뇌는 정답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이 모든 생각의 착각 원인은 단 하나의 진실로 귀결됩니다. 우리의 뇌는 진실을 탐구하거나, 가장 정확한 답을 찾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뇌의 최우선 목표는 오직 하나, 바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시스템 2를 가동하는 것은 엄청난 칼로리를 소모하는 힘든 일입니다. 그 대신 시스템 1을 이용해 쉬운 질문으로 바꿔치기하고 즉각적인 답을 얻는 것은 지름길을 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답이 틀릴지라도, 일단 에너지를 아끼고 보는 것이 뇌의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우리가 왜 그토록 쉽게 가짜뉴스에 선동당하고,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감정적인 결정에 후회하는지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되시나요? 그 배후에는 항상 어려운 질문을 손쉬운 감정과 직관으로 바꿔치기해버리는 우리의 '효율적인' 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입니다.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이 자동화된 반응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첫걸음을 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 뇌라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마술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관객이 되었습니다. 시스템 1이라는 재빠른 마술사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시스템 2라는 현명한 감독의 힘을 빌려 그 트릭을 간파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