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 얼마나 믿으시나요?
우리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믿습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만약, 당신의 눈과 뇌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당신을 속이고 있다면 어떨까요?
여기 아주 간단하지만,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뮐러-라이어 착시(Müller-Lyer illusion)'입니다. 위아래 두 개의 수평선 중 어느 쪽이 더 길어 보이시나요? 아마 열에 아홉은 아래쪽 선이 훨씬 더 길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보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를 가져와 길이를 재 보십시오. 놀랍게도, 두 선의 길이는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진실을 '안다'는 것과 다르게 '본다'는 것의 충돌
이제 당신의 뇌 속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자로 길이를 잰 당신의 이성, 즉 '시스템 2'는 "두 선의 길이는 같다"는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길이를 물으면, 당신은 당신이 '아는' 사실을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눈은 여전히 아래쪽 선이 더 길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착시의 가장 무서운 점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된 후에도, 착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직관, 즉 '시스템 1'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내 의지로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선을 똑같이 '보기로' 결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인지 착각(Cognitive Illusion)의 강력한 힘입니다.
생각의 착각: 눈뿐만 아니라 마음도 속는다
이러한 착각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착각'이라 부르며, "판단 과정에서 발생하는 체계적인 합리성 편향"으로 정의합니다(Pohl, 2008).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듭니다. 그가 대학원생 시절, 한 노련한 교수가 이런 임상 지혜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과거 여러 치료사에게 실패한 경험을 줄줄이 늘어놓는 환자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는 다른 치료사들이 자신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명료하게 설명하며, '당신만은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도 그를 완벽히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느끼게 될 겁니다. 바로 그 순간, 그 환자를 맡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십시오! 당장 사무실에서 내쫓으세요! 그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고, 당신은 결코 그를 도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병적 매력'이라는 인지 착각입니다. 환자에 대한 강한 공감과 자신감은 우리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1로부터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이 느낌이 '잘못된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만 그 착각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착각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 내 직관을 불신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강력한 시스템 1 오류와 인지 착각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 답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시스템 1은 의지대로 끄고 켤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직관적 사고의 오류는 예방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타협안을 찾는 것입니다. 바로 실수가 발생하기 쉬운 특정 상황의 '패턴'을 배우고, 그 패턴을 인식했을 때 내 직관을 의심하는 법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 양 끝에 화살표가 달린 선의 길이를 판단할 때는 내 눈을 믿지 않는다.
- 실패한 치료 경험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며 특별한 유대감을 표현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는 내 공감 능력을 의심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는 것은 피곤하고 비실용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걸린 순간, 나의 첫 느낌과 직관이 혹시 '뮐러-라이어 착시'는 아닌지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수많은 실수를 피하고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