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치 않은 왕관을 쓴 황제의 고독한 투쟁 (로마 황제 생애)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불멸의 저서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될 운명이 아니었던 한 소년이 어떻게 끊임없는 전쟁과 역병, 반란 속에서 철학에 의지해 가장 위대한 군주가 되었는지 그의 생애를 탐구합니다.

플라톤의 꿈, 철학자 왕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거나,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기 전까지 국가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이 이상적인 '철학자 왕'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을 단 한 명 꼽으라면, 우리는 거의 망설임 없이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2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책, 『명상록』의 저자이자 거의 20년간 로마 제국을 다스렸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입니다.

하지만 정작 마르쿠스 자신은 그 칭호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스스로를 철학자라 생각한 적이 없었으며, 기껏해야 다른 이들이 발전시킨 철학을 서툴게나마 실천하려는 부지런한 학생이라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가 올랐던 황제의 자리조차,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거의 '우연'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황제가 될 운명이 아니었던 한 소년이, 어떻게 가장 위대한 '철학자 왕'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는지, 그의 고독하고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원치 않은 운명의 서막

서기 121년, 로마의 유서 깊은 원로원 가문에서 태어난 마르쿠스 아니우스 베루스. 그의 탄생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가 장차 원로원에서 출세하거나 제국의 훌륭한 행정가가 될 것이라 예상했을 뿐, 감히 그가 제국의 보라색 옷(황제의 상징)을 입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진지한 아이였지만, 동시에 권투, 레슬링, 사냥을 즐기는 건강한 상류층 소년이었습니다. 그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16살 되던 해였습니다.

당시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는 자식이 없었고, 그가 지명했던 후계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의 선택은 원로원 의원 안토니누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었습니다. 안토니누스가 마르쿠스와 전 후계자의 아들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양자로 입양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정 하나로, 마르쿠스의 삶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제국의 왕좌로 향하는 길 위에 놓이게 됩니다. 그는 양아버지의 성을 따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이때부터 제국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미래의 통치자로서 훈련받게 됩니다.

황제의 길: 멈추지 않는 시련의 연속

서기 161년, 양아버지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마르쿠스는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양형제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임명하며 권력을 나누는 미덕을 보였지만, 평화는 잠시뿐이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마치 신이 한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모든 시련을 시험하는 듯한, 끊임없는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 동방의 전쟁: 즉위 직후, 로마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파르티아 제국이 침략해왔고, 4년간의 힘겨운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 안토니누스 역병: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끔찍한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제국 전역에 퍼진 흑사병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 북방의 전쟁: 전염병으로 제국이 신음하는 사이, 북쪽 국경에서는 게르만족(마르코만니족, 콰디족 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르쿠스는 이후 생의 대부분을 이들과의 지루하고 잔혹한 전쟁터에서 보내게 됩니다.
  • 반란과 배신: 힘겨운 전쟁을 치르던 중, 동방의 총독이자 가장 신임했던 장군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를 칭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내전의 위기는 부하의 암살로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습니다.
  • 개인적인 비극: 이 모든 와중에, 그는 공동 황제였던 동생 루키우스 베루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어야 했고, 동방 원정길에서는 아내 파우스티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낳은 13명의 자녀 중 대부분은 어린 나이에 죽었습니다.

전쟁터에서 피어난 철학, 『명상록』

바로 이 시기, 마르코만니 전쟁이 한창이던 170년대, 그의 삶의 마지막 10년 동안 『명상록』이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매일 밤, 차가운 게르마니아의 막사 안에서, 그는 쉴 새 없이 닥쳐오는 외부의 혼돈에 맞서 자신의 내면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무기, 즉 철학의 칼을 갈았던 것입니다.

고독한 죽음과 엇갈린 유산

서기 180년, 17년간의 통치를 마치고 58세의 나이로 마르쿠스는 다시 돌아온 북방의 전쟁터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는 로마 역사상 100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친아들에게 왕좌를 물려준 황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콤모두스는 아버지가 가졌던 위대한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방탕하고 잔인한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었고, 그의 암살 이후 로마는 100년간의 기나긴 혼란의 시대로 빠져들게 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삶은 역설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평화를 사랑했지만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누구보다 고독했으며, 가장 이상적인 통치를 펼쳤지만 가장 끔찍한 폭군에게 제국을 물려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비극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책 『명상록』은 그가 외부 세계의 혼돈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한 인간이 내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분투했는지를 증언하며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철학을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플라톤이 꿈꾸었던 가장 완벽한 '철학자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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