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능력, 사실은 '이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심리학자 조언)

나이, 인종,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다루듯, 다름을 존중하는 것은 모든 관계의 시작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분명 좋은 사람 같은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동료. 내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친구. 심지어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가족의 낯선 모습 앞에서 당황했던 순간. 우리는 매일 수많은 ‘다름’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다름 앞에서 나도 모르게 선을 긋고, 마음의 셔터를 내려 버리곤 하죠.

솔직히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저 역시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며 소중한 관계를 밀어냈던 부끄러운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교 시절, 저에겐 파티마라는 룸메이트가 있었습니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던 그녀는 히잡을 쓰고 기도를 올리는, 저와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이었죠. 인기를 얻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저는, 조용하고 수줍음 많던 그녀를 ‘이상하다’고 치부하며 없는 사람처럼 대했습니다. 그녀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아주 작은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겁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저는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잔인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이토록 어려워하는 걸까요? 그리고 그 차가운 시선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 오늘 그 불편한 진실을 깊이 파고들어 보려 합니다. 아마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당신의 인간관계 지도가 완전히 새롭게 그려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왜 ‘나와 같음’이라는 착각에 빠지는가? 🤔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일성’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끼죠. 이건 생존을 위한 아주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본능이 ‘다름’을 향한 배척과 편견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철학에서는 이를 ‘동일성의 관점’과 ‘다원성의 관점’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으로 설명합니다(박준웅, 2021). ‘동일성의 관점’은 세상에 단 하나의 보편적인 정답이 존재하며, 그와 다른 것들은 틀렸거나, 극복되어야 할 미성숙한 상태로 보는 시각입니다. 마치 과학자들이 수많은 가설 중 단 하나의 진리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말이죠.

문제는 우리가 이 과학적 태도를 인간관계에 무의식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내 생각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믿음 아래, 그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보면 불편함을 느끼고,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며 틀린 그림 찾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7살 때, 처음으로 떠난 미국 여름캠프에서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던 제가 겪었던 소외감, 혹은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우리’와 ‘그들’을 나누던 그 미묘한 공기.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동일성의 관점’이 만들어낸 작은 비극들입니다.

“내 노력으로 성공했는데, 뭐가 문제?” – 공정함이 만든 가장 잔인한 편견 🏆

현대 사회는 이 ‘다름’에 대한 편견을 더욱 교묘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강화합니다. 바로 ‘능력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죠. 마이클 샌델 교수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듯, 우리는 ‘성공은 오직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지극히 공정해 보이는 이 생각이, 실은 얼마나 무서운 함정을 파고 있는지 아시나요? 내가 이룬 성공이 100% 나의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노력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게 됩니다. 나의 성공에 대한 자부심은, 타인의 실패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 쉽게 변질되는 것이죠.

이는 단순히 사회 계층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인간관계 속에서도 이 능력주의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소비 습관을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삶의 우선순위를 가진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의 삶의 맥락과 이유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저건 비합리적이야’, ‘저건 현명하지 못해’라며 너무도 쉽게 재단해버립니다. 나의 ‘합리성’과 ‘올바른 판단 능력’을 기준으로 타인의 ‘다름’을 평가절하하는 것,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가 낳은 가장 일상적이고 잔인한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진짜 공감은 ‘이해’가 아닌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

그렇다면 이 지독한 편견과 오만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저는 그 답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닌, ‘나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과거의 저를 한번 보세요. 왜 파티마를 그토록 밀어냈을까요? 사실 저는 그녀의 다름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을 때 ‘평범하지 않은 애’로 보일까 봐 두려웠던 제 자신을 밀어냈던 겁니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이민자라는 저의 정체성,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평범한 미국 아이들’ 무리에 섞이고 싶었던 저의 불안감이, 파티마를 향한 차가운 시선으로 나타났던 것이죠.

제가 학교 장기자랑에서 용기를 내어 베네수엘라 전통 춤을 추었을 때, 아이들은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의 다름은 숨겨야 할 약점이 아니라,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특별함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파티마의 특별함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지켜온 신념과 문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비뚤어지고, 이상하고, 남들과 다른 구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타인의 독특함을 비난이 아닌 호기심으로 바라볼 여유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감 능력의 진정한 출발점입니다.

관계를 살리는 공감의 기술, ‘존중’ 연습법 📝

나 자신의 다름을 끌어안을 용기가 생겼다면, 이제 타인의 다름을 존중하는 구체적인 기술을 연습할 차례입니다.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인성교육 연구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힌트를 줍니다. 연구진은 아이들에게 16회기에 걸쳐 ‘배려’와 ‘존중’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가르쳤고, 그 결과 아이들의 타인 존중 태도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황순영, 이후희, 2017). 이 연구에서 사용된 몇 가지 핵심적인 방법을 어른들의 인간관계에 맞게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판단’을 멈추고 ‘호기심’으로 질문하기: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마주했을 때, ‘왜 저래?’라는 자동적인 판단을 잠시 멈춰보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 ‘왜 저렇게 생각하게 됐을까?’라는 순수한 호기심을 채워 넣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 와 같은 질문은 방어적인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의 세상을 살짝 엿볼 기회를 줍니다.
  2. 나의 세상을 잠시 떠나 그의 세상에 머물러보기:
    연구에서 아이들은 ‘다른 입장의 사람 역할극’을 통해 나와 다른 친구의 입장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도 마음속으로 이런 역할극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저 사람의 상황이라면?’, ‘저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건 뭘까?’ 아주 잠시만이라도 내 생각의 프레임을 벗어나 상대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야는 놀랍게 확장됩니다.
  3. 작은 존중을 언어로 표현하기: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생각을 존중할 수는 있습니다.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알겠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미처 생각 못했네." 와 같은 말은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이러한 작은 존중의 표현들이 쌓여 신뢰의 다리가 놓이는 것이죠.

결론: ‘다름’은 틀림이 아닌,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 ✨

우리는 평생에 걸쳐 ‘다름’과 씨름합니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죠.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것처럼, ‘다름’을 향한 우리의 불편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이자, ‘공정함’이라는 사회적 신화가 만들어낸 착각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불편한 감정 앞에서 멈춰 서서, 이것이 과연 ‘틀림’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하지 않음’의 문제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용기입니다. 나의 약점과 독특함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타인의 특별함을 존중할 마음의 공간이 생겨납니다.

결국 다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훨씬 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경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흑백 TV를 끄고 총천연색 UHD TV를 켜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이 만나 더 큰 우주를 만들어가는 경이로운 경험,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요?

❓ 자주 묻는 질문(FAQ)

Q1.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마음으로 공감하기 너무 힘든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A1. 👉 훌륭한 질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마음으로 공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인지적 공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즉, ‘저 사람의 입장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이해된다’고 생각의 수준에서 인정하는 것이죠. 감정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행동 원인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건강한 관계의 시작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순 없지만, 모든 사람을 존중할 수는 있습니다.

Q2. 아이에게 '다름'을 존중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A2. 👉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가 직접 본보기를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다양한 사람과 문화에 대해 편견 없는 태도를 보이고, TV나 책에 나오는 다른 모습의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또한, 아이가 친구와 다퉜을 때 "네가 친구 입장이라면 기분이 어땠을까?"라고 질문하며 자연스럽게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Q3. 저는 오히려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지치고 힘들어요. 어떻게 하죠?

A3. 👉 ‘공감 피로(Empathy Fatigue)’를 겪고 계시는군요. 이는 매우 흔하며, 특히 타인을 돕는 직업군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이럴 때는 의식적으로 ‘나’와 ‘타인’ 사이에 건강한 경계선을 긋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감정을 함께 느끼되, 그것이 나의 감정은 아님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상이나 일기 쓰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돌보는 시간을 갖고,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이건 그 사람의 몫’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나를 지키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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