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마음속에 풀지 못한 응어리,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수십 년간 혼자 삭여온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게 설령 아주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문득문득 나를 짓누르는 트라우마 같은 느낌 말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습니다. 잘못한 것 같긴 한데, 너무나도 억울했던 그 마음을 수십 년 동안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는 비로소 그 기억과 싸워 이겼습니다. 거창한 복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 말이죠.
글쓰기는 엉킨 마음을 정리하는 '빨래 개기'입니다
저는 글쓰기를 '빨래 개기'라고 생각합니다. 세탁기에서 막 꺼낸 빨래들이 서로 엉켜있을 때, 마음이 답답하고 심란하잖아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요. 우리의 마음도 꼭 그렇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감정들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켜있죠.
하지만 마음먹고 빨래를 하나씩 탁탁 털어 차곡차곡 개어 놓으면, 산더미 같던 빨래 더미는 정갈하게 정리되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글쓰기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던 감정들을 글로 하나씩 꺼내어 펼쳐놓고, 문장으로 반듯하게 개어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저의 40년 묵은 '받아쓰기 트라우마' 이야기
오래전,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봤는데, 글씨를 배운 지 얼마 안 돼서인지 많이 틀렸습니다. 어린 마음에 빨간 작대기가 그어진 시험지가 너무 속상해서, 저는 그 작대기 양쪽 끝을 동그랗게 이어서 예쁜 반달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그걸 보시더니 제 딴에는 예쁘게 꾸민 그 반달 모양을 장난친 것으로 여기셨나 봅니다. "이거 누가 했니?" 단호한 목소리에 저는 겁을 먹었고, 결국 그 일로 심하게 맞았습니다.
그때의 기억은 억울함과 서러움이라는 감정으로 남아 저를 오랫동안 짓눌렀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죠.
그러다 수십 년이 지나 글쓰기를 하면서, 문득 그날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그 어린 필자의 속상했던 마음, 선생님께 야단맞던 순간의 감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글로 써 내려갔습니다. 한참을 쓰고 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을 다 쓰고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 이제 내가 이긴 것 같아."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감정 글쓰기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복수해서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 안에 갇혀 있던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꺼내주고, 억울했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저는 비로소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나를 위로하고, 내가 말하지 못했던 것을 풀어낼 수 있게 된 것이죠.
글쓰기는 나를 '관찰자'로 만듭니다
글쓰기 치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 우리는 고통의 주인공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됩니다. 한 걸음 떨어져 나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다룰 힘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 글쓰기가 가진 놀라운 글쓰기 효과입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기록은 남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상처를 이겨냈는지 증명하는 소중한 자료가 됩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과 같습니다.
당신을 짓누르고 있는 오래된 기억이 있다면, 오늘 밤 조용한 책상에 앉아 그 이야기를 한번 꺼내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의 승리는, 어쩌면 그 작은 펜 끝에서 시작될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