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전혀 상관없는 정보에 휘둘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섬뜩해진 적 없으신가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 교묘한 '앵커링 효과'를 세상에 처음 알린 저와 제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조차 그 현상의 진짜 원인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하나의 해석을, 저는 다른 해석을 지지했죠. 수십 년이 지나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지금에야, 저희 둘 다 옳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앵커링 효과는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두 개의 시스템, 즉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두 개의 다른 현상입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판단을 조종하는 이 두 가지 힘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의식적인 줄다리기: 시스템 2의 '조정(Adjustment)'
제 동료 아모스는 '앵커링 효과'를 불확실한 값을 추정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 즉 '조정과 정박 휴리스틱(Adjust-and-anchor heuristic)'으로 설명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이 관점의 핵심은, 우리의 뇌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기준점(앵커)이 주어지면, 우리의 이성적인 시스템 2는 그 숫자가 너무 높은지, 혹은 낮은지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점으로부터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 정신적인 줄다리기를 하며 이동하죠. 하지만 이 '조정' 과정은 대부분 너무 일찍 멈춰버립니다. 더 움직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 지점에서 멈추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시내로 들어오면 과속하는 이유
이 '불충분한 조정'은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시내의 50km 제한 구역으로 들어왔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100km라는 높은 기준점(앵커)에서 충분히 '조정'하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60~70km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게으르고 힘든 일을 싫어하는 시스템 2의 명백한 실패입니다.
이처럼 '조정'으로서의 앵커링은, 우리가 무언가를 바로잡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충분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시스템 2의 불완전한 작동 방식입니다.
무의식적인 속삭임: 시스템 1의 '점화(Priming)'
저는 아모스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조정'은 의식적인 활동인데, 대부분의 앵커링 상황에서는 그런 경험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보세요.
"간디는 144세보다 많은 나이에 사망했나요, 적은 나이에 사망했나요?"
당신은 간디의 사망 나이를 추정하기 위해 144세에서부터 숫자를 하나씩 '조정'해 내려왔나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숫자는 분명 당신의 최종 추정치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암시(Suggestion)'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수수께끼는 '점화 효과(Priming Effect)'라는 개념이 정립되면서 풀렸습니다. 점화 효과란, 특정 정보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관련된 다른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적인 시스템 1은 문장을 들으면 일단 그것이 '사실인 세상'을 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햇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해변'이 떠오르는 것처럼
독일의 심리학자 토마스 무스바일러와 프리츠 슈트라크는 이 점화 효과의 역할을 증명하는 멋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Mussweiler & Strack, 1997). 한 그룹에게는 "독일의 연평균 기온이 20°C보다 높은가요, 낮은가요?"라고 묻고, 다른 그룹에게는 기준을 5°C로 물었습니다.
그 후 단어 연상 테스트를 진행하자, 20°C라는 높은 앵커에 노출된 사람들은 '햇살', '해변' 같은 여름 관련 단어를 더 빨리 인식했습니다. 반면 5°C라는 낮은 앵커는 '서리', '스키' 같은 겨울 관련 단어를 점화시켰죠. 즉, 앵커 숫자가 전혀 다른 기억의 서랍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추정치는 이렇게 편향된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온 정보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편향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 1이 우리에게 거는 교묘하고 자동적인 속임수, '점화'로서의 앵커링입니다.
한 지붕 두 가족: 앵커링 효과의 진짜 모습
결론적으로, 앵커링 효과는 하나의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두 시스템이 각자의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현상의 총칭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구분 | 조정 (Adjustment) - 시스템 2 | 점화 (Priming) - 시스템 1 |
|---|---|---|
| 작동 방식 |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 |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연상 |
| 정신적 노력 | 많은 노력이 필요함 (힘들다) | 노력이 전혀 필요 없음 (쉽다) |
| 주요 원인 | 이성적 판단의 '게으름'과 '불충분함' | 연상 작용의 '자동적인 속임수' |
| 핵심 비유 | 무거운 닻을 힘들게 끌어당기는 '줄다리기' | 귓가에 들려오는 나지막한 '속삭임' |
| 대표 사례 | 고속도로에서 시내로 진입 시 과속 | "간디는 144세에 죽었나?"라는 질문 |
결국 수십 년에 걸친 저희의 논쟁은 둘 다 옳았다는 아름다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이성이 게으름을 피워 충분히 움직이지 못하고, 때로는 우리의 무의식이 너무 부지런하게 움직여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을 조종하는 두 가지 힘의 정체를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다음번 중요한 결정 앞에서, 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와 속삭임을 알아차릴 수 있으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