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식에 던지는 질문: 둘 중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가요?
잠시 당신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가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두 가지 재난 영화 시나리오가 올라왔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이야기가 더 흥행할 것 같고, 또 더 '실제로 일어날 법하다'고 느끼시나요?
- 시나리오 A: 내년에 북미 어딘가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1,000명 이상이 익사한다.
- 시나리오 B: 내년에 캘리포니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고, 그 여파로 대규모 홍수가 일어나 1,000명 이상이 익사한다.
아마 많은 분들이 B 시나리오에 더 마음이 끌렸을 겁니다. '캘리포니아', '대지진'이라는 구체적인 디테일이 더해지니, 막연한 A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손에 잡힐 듯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뇌는 아주 교묘하고 달콤한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B 사건(캘리포니아 지진 홍수)은 A 사건(북미 홍수)의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즉, B는 A라는 거대한 집합 안에 포함된 작은 부분집합이죠. 따라서 B가 일어날 확률은 A가 일어날 확률보다 절대로 높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이 명백한 사실을 왜 그렇게 쉽게 외면할까요? 이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자들이 '결합 오류(Conjunction Fallacy)'라고 부르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논리적 착각 중 하나입니다.
결합 오류란 무엇인가: 상세할수록 멀어지는 진실
결합 오류는 우리의 뇌가 가진 치명적인 버그와 같습니다. 이 버그는 아주 단순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두 사건의 결합(A와 B)이, 단일 사건(A)보다 더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논리적 오류.
우리는 왜 이런 오류를 범할까요? 답은 우리의 뇌가 '수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차갑고 건조한 확률을 계산하는 것보다, 따뜻하고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합니다.
그럴듯함(Plausibility) vs 확률(Probability)
결합 오류의 핵심에는 '그럴듯함'과 '확률'이라는 두 개념의 혼동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지진 이야기는 우리의 머릿속에 저장된 수많은 재난 영화, 뉴스와 결합해 아주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디테일이 더해질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우리의 상상력은 자극받죠. 그리고 우리는 이 생생한 '그럴듯함'을 '높은 확률'과 동일시해버립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핵심 원칙은 이것입니다. 어떤 사건에 디테일이 더해질수록, 그 이야기는 더 매력적이고 그럴듯해지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오직 낮아질 뿐입니다.
이 함정이 작동하지 않을 때: 이야기가 없는 디테일
그렇다면 이 논리적 함정은 언제나 작동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오류가 힘을 잃는 순간을 보면 그 본질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두 문장 중, 어느 쪽이 더 확률이 높을까요?
- A: 마크는 머리카락이 있다.
- B: 마크는 금발 머리카락이 있다.
이번에는 아무도 B가 더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A를 선택하죠. 왜일까요? '금발'이라는 디테일이 추가되었지만, 이 디테일은 '마크'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그럴듯한 '이야기'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건조한 사실의 나열일 뿐이죠. 이렇게 경쟁할 만한 '이야기'가 없을 때, 우리의 뇌는 비로소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나 논리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일상 속 '시나리오 예측 함정'을 피하는 법
결합 오류는 단순한 심리 실험실 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에 깊숙이 뿌리내린 '시나리오 예측 함정'입니다.
새로운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 온갖 긍정적인 디테일(성공한 고객 인터뷰, 화려한 시장 전망)이 더해질수록 그 계획은 훨씬 더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이 동시에 충족될 확률은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집니다. 정치인의 공약, 금융 상품의 예측, 심지어 우리가 세우는 새해 계획까지,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시나리오일수록 우리는 그 실현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교묘한 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습관에서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저 '그럴듯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확률'이 높은 것인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매력적인 이야기의 마법에서 잠시 깨어나,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가능성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디테일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단순한 진실의 뼈대를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짜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