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식에 던지는, 지극히 간단한 질문 하나
혹시 당신의 이성과 논리가 얼마나 예리한지 시험해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여기, 행동경제학의 세계를 뒤흔든 한 여성, 린다(Linda)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녀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알려드릴 테니, 딱 1분만 집중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해 보세요.
린다는 31세의 미혼 여성으로,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매우 총명합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차별과 사회 정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반핵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자, 이제 린다가 어떤 사람인지 머릿속에 그려지시나요? 아마 1980년대의 자유로운 영혼, 히피 문화가 남아있는 캘리포니아의 어느 대학 캠퍼스를 떠올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당신의 논리가 빛을 발할 시간입니다.
아래 두 가지 시나리오 중, 린다에게 더 어울리는, 즉 더 확률이 높은 설명은 무엇일까요?
잠시 멈춰서 진지하게 당신의 답을 골라보세요.
- 린다는 은행원이다.
- 린다는 은행원이며, 페미니스트 운동에 적극적이다.
어떤 것을 고르셨나요? 만약 당신이 2번을 골랐다면,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명백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셨습니다.
논리가 직관에 무릎 꿇는 순간, '결합 오류'
이 문제가 바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를 흥분시켰던 유명한 '린다 문제(The Linda Problem)'입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확률'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파고듭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까요? 세상의 모든 '페미니스트 은행원'은 예외 없이 '은행원' 집합에 포함됩니다. 즉, '페미니스트 은행원'의 수는 전체 '은행원'의 수보다 절대로 많을 수 없죠. 따라서 린다가 '페미니스트 은행원'일 확률은, 그녀가 그냥 '은행원'일 확률보다 반드시 낮거나 같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벤 다이어그램의 기본 원리이자, 확률의 기초 법칙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실험을 진행했을 때, 그들은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했습니다. 똑똑한 대학생들의 89%가 2번, 즉 '페미니스트 은행원'의 확률이 더 높다고 답했습니다. 연구진은 통계에 더 익숙한 사람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확률, 통계, 의사결정 이론을 전공한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그들 중 85%가 똑같은 오류를 범했습니다.
연구진은 점점 더 절박한 시도를 했습니다. 마침내 한 학부 수업에서 이 명백한 논리 오류를 지적하며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기본적인 논리 규칙을 어겼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뒷줄에서 한 학생이 소리쳤죠.
"그래서 뭐요?(So what?)"
이것이 바로 인간 직관의 무서운 힘입니다. 우리의 뇌는 차가운 확률 계산보다, 따뜻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에 훨씬 더 강하게 끌립니다. 린다의 프로필은 '페미니스트'라는 이미지와는 찰떡처럼 어울리지만, '은행원'과는 어딘가 어색하죠. 여기에 '페미니스트'라는 구체적인 디테일이 추가되자, 어색했던 이야기는 훨씬 더 일관성 있고 그럴듯하게 변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이 '그럴듯함(Plausibility)'을 '확률(Probability)'로 착각해 버립니다.
결합 오류 (Conjunction Fallacy)
사람들이 두 사건의 결합(은행원이자 페미니스트)이 단일 사건(은행원)보다 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때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를 말합니다. 더 상세한 시나리오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릴 때, 우리는 그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믿는 함정에 빠집니다.
내 머릿속의 작은 독재자, '대표성 휴리스틱'
왜 세계 최고의 석학들조차 이런 명백한 함정에 빠지는 걸까요? 카너먼은 우리의 머릿속에 두 가지 다른 사고방식, 즉 시스템 1과 시스템 2가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 시스템 1: 빠르고, 자동적이며, 직관적인 사고방식입니다.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결론을 내리죠. '이야기'를 사랑하고, 패턴을 찾으려 합니다.
- 시스템 2: 느리고, 의식적이며, 노력이 필요한 논리적 사고방식입니다. 복잡한 계산을 하거나, 신중한 판단을 내릴 때 활성화됩니다.
린다 문제는 이 두 시스템의 전쟁터입니다. 린다의 프로필을 읽는 순간, 우리의 시스템 1은 즉시 '아, 이 사람은 페미니스트 활동가에 가깝겠군!'이라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 즉 특정 대상이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이나 전형적인 이미지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기준으로 확률을 판단해버리는 강력한 정신적 지름길입니다.
시스템 1이 '페미니스트 은행원'이라는 훨씬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속삭일 때, 우리의 게으른 시스템 2는 "음, 그럴듯하네"라며 별다른 저항 없이 그 의견을 승인해버립니다. 굳이 힘을 들여 벤 다이어그램을 떠올리고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려 하지 않는 것이죠.
저명한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조차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 머릿속의 작은 호문쿨루스(난쟁이)가 계속해서 팔짝팔짝 뛰며 소리친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은행원일 리가 없잖아. 설명을 다시 읽어보라고!'"
그의 머릿속에서 소리치는 작은 독재자,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가진 시스템 1의 강력한 목소리입니다.
이 작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린다 문제는 단순히 재미있는 심리 퀴즈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할 때 얼마나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예를 들어, "내년에 북미 어딘가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할 확률"보다 "내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지진이 발생해 대규모 홍수가 일어날 확률"이 더 낮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후자의 시나리오를 더 가능성 있다고 평가합니다. 세부 사항이 추가될수록 시나리오는 더 설득력을 얻지만, 논리적으로는 실현될 가능성이 더 낮아지는 역설이죠.
우리는 매일 수많은 판단을 내리며 살아갑니다.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혹은 뉴스 헤드라인을 접할 때, 우리의 시스템 1은 끊임없이 그럴듯한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린다 문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때로는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가장 위험한 함정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짜 지혜는 내 머릿속의 직관적인 목소리에 "잠깐, 정말 그럴까?"라고 질문하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당신의 머릿속 작은 독재자는 어떤 그럴듯한 이야기로 당신을 유혹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