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를 시험하는 마지막 질문
우리는 앞선 글들에서 '린다 문제'와 '깨진 접시 실험'을 통해 우리의 직관적인 뇌(시스템 1)가 얼마나 쉽게 논리의 함정에 빠지는지 목격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강력한 직관의 폭주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요? 과연 이 고질적인 인지 편향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요?
여기, 행동경제학자들이 찾아낸 한 줄기 빛과 같은 해결책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당신을 간단한 실험에 초대합니다. 당신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보건 연구원이라고 상상하고, 아래 질문에 대한 최선의 추정치를 답해보세요.
질문 A: 백분율(Percentage) 질문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건강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아래 값에 대한 당신의 최선의 추정치를 알려주세요.
- 조사 대상 남성 중 한 번 이상 심장마비를 경험한 비율은 몇 퍼센트입니까?
- 조사 대상 남성 중 55세 이상이면서 한 번 이상 심장마비를 경험한 비율은 몇 퍼센트입니까?
어떤가요? '린다 문제'와 똑같은 구조라는 게 보이시나요? '55세 이상 심장마비 환자'는 전체 '심장마비 환자'의 부분집합이므로, 논리적으로 두 번째 값은 첫 번째 값보다 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은 그룹에서는 무려 65%의 사람들이 결합 오류를 범했습니다.
게으른 뇌를 깨우는 마법의 단어: '몇 명?'
그런데 연구진이 다른 그룹에게는 단어 몇 개만 바꿔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질문 B: 빈도(Frequency) 질문
100명의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건강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아래 값에 대한 당신의 최선의 추정치를 알려주세요.
- 100명의 참가자 중 한 번 이상 심장마비를 경험한 사람은 몇 명입니까?
- 100명의 참가자 중 55세 이상이면서 한 번 이상 심장마비를 경험한 사람은 몇 명입니까?
놀랍게도, 결과는 극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질문 B를 받은 그룹에서는 결합 오류를 범한 사람이 25%로 급감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몇 퍼센트?'를 '100명 중 몇 명?'으로 바꾼 것이 전부인데 말입니다.
추상적인 확률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번역하라
이것이 바로 인지 편향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빈도 표현(Frequency Representation)'의 효과입니다. 우리의 뇌는 '퍼센트'나 '확률'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데 매우 서툽니다. 하지만 '100명의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는 거대한 방 안에 모여 있는 실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공간적인 이미지 속에서, '심장마비를 경험한 사람들'이 방 한쪽 구석에 모여 있고, 그중 일부만이 '55세 이상'이라는 푯말 아래 다시 모이는 장면을 상상하기는 훨씬 쉽습니다. 즉, 한 그룹이 다른 그룹에 완전히 포함된다는 논리적 관계가, 추상적인 숫자가 아닌 구체적인 '그림'으로 번역되어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죠. 이 명확한 그림 앞에서, 게으르던 우리의 이성(시스템 2)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오류를 바로잡습니다.
일상에서 써먹는 인지 편향 극복 도구 2가지
'빈도 표현'의 원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뇌를 탓하는 대신, 뇌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번역'해주면 훨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당신의 정신적 무기고에 추가할 두 가지 강력한 '탈편향(Debiasing)' 도구가 있습니다.
- 반대 관점을 의도적으로 고려하기 (Consider the Opposite)
우리는 자신의 처음 생각이나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찾아보려는 경향(확증 편향)이 있습니다. 이를 깨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에게 "만약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강제로 질문하는 것입니다(ResearchGate). 예를 들어, 새로운 투자처가 마음에 든다면, '이 투자가 성공할 이유' 대신 '이 투자가 처참하게 실패할 5가지 이유'를 먼저 적어보는 식입니다. 이 과정은 우리의 게으른 시스템 2를 강제로 활성화시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위험과 허점을 보게 만듭니다. - 결정을 내리기 전, 잠시 거리를 두기 (Introduce a Circuit Breaker)
우리의 성급한 직관(시스템 1)은 감정적인 상태일 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분노, 흥분, 불안과 같은 감정은 우리의 논리 회로를 마비시키죠.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10분만 다른 생각을 하자" 또는 "내일 아침에 다시 검토하자"와 같이 의도적으로 '시간적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Farnam Street). 이 짧은 멈춤은 시스템 1의 감정적 폭풍이 지나가고, 시스템 2가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줍니다.
더 나은 결정은 '더 똑똑한 뇌'가 아니라 '더 나은 도구'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인지 편향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뇌의 기본 설정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편향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우회할 수 있는 현명한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무언가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추상적인 가능성에 매몰되지 마세요. 대신, 당신의 머릿속에 100명의 사람들을 세워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세요.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이라고요. 그 작은 노력 하나가 당신을 훨씬 더 지혜로운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