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특정 정치인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누군가와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나는 명백한 사실과 데이터를 근거로 주장하지만, 상대방은 막무가내로 자신의 의견만 내세웁니다. 답답한 마음에 "왜 저 명백한 사실을 보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상대방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신념과 판단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우리의 이성을 교묘하게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 '감정 휴리스틱(Affect Heuristic)'의 세계와, 이 현상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증폭되고 있는지 그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논리가 아닌 감정이 먼저다: 폴 슬로빅의 '감정 휴리스틱'
심리학자 폴 슬로빅(Paul Slovic)은 사람들이 복잡한 세상사를 판단할 때, 시간과 노력이 드는 논리적 분석 대신 '좋다' 또는 '싫다'는 감정적 느낌을 지름길로 사용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 휴리스틱'의 핵심입니다(Paul Slovic et al.).
예를 들어볼까요?
- 내가 좋아하는 정당의 정책은? → 혜택은 커 보이고, 비용이나 부작용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 내가 싫어하는 음식(예: GMO 식품)은? → 위험성은 매우 커 보이고, 그것이 주는 이점은 거의 없다고 믿는다.
이처럼 우리의 감정은 이성의 재판관이 아니라,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독재자와 같습니다. '좋다'는 감정이 먼저 생기면, 우리의 이성(시스템 2)은 그 결론을 정당화할 근거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폄하하면서 말이죠. 우리는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결론을 '논리적으로 보이게' 포장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신념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
이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의 판단을 매우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이끕니다. 대니얼 카너먼은 국제 정세에 대한 태도를 예로 듭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나라에 대해 매파적 태도를 가졌다면, 당신은 그들이 비교적 약하고 우리나라의 의지에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당신이 비둘기파라면, 당신은 그들이 강하고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강하고 약하다는 '사실 판단'이 먼저가 아닙니다. 그 나라를 위협으로 보느냐, 대화의 상대로 보느냐는 '감정적 태도'가 우리의 논리를 미리 결정해버리는 것입니다.
알고리즘은 어떻게 우리의 감정을 무기로 사용하는가
문제는 이 타고난 인지적 편향이 현대 기술과 만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함정'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반향실(Echo Chamber)' 현상 때문입니다.
소셜 미디어나 검색 엔진의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 아래, 우리의 모든 클릭, '좋아요', 공유 기록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 분석을 통해 우리가 '좋아하는(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콘텐츠를 더 많이 보여주기 시작합니다(Nguyen, 2022).
이것이 바로 감정 휴리스틱과 만났을 때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 (감정 휴리스틱): 나는 내가 좋아하는 A라는 의견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 (필터 버블): 알고리즘은 "아, 이 사용자는 A를 좋아하는구나!"라고 학습하고, A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다른 게시물들을 나의 뉴스피드에 더 많이 노출시킵니다.
- (확증 편향): 나는 계속해서 A가 옳다는 증거들만 보게 되면서, 나의 신념은 더욱 강해집니다. 반대 의견(B)은 아예 보이지도 않으니, B를 믿는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 (반향실): 나는 A를 믿는 다른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우리의 신념은 집단적으로 더욱 극단화되고 견고해집니다.
결국, 알고리즘은 우리의 '감정'을 먹이 삼아, 우리 스스로를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투명한 감옥에 가둬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토록 양극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왜 다른 의견에 귀를 닫게 되는지 이제 그 이유가 조금 더 명확해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념은 순수한 이성의 결정체가 아니라, 우리의 깊은 감정과 그것을 증폭시키는 알고리즘이 합작한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일 수 있습니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상대방을 바꾸려는 노력'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성찰'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 신념은 과연 수많은 정보를 검토한 끝에 내린 합리적인 결론일까요? 아니면, 그저 나의 기분을 편안하게 해주는 감정의 요새는 아닐까요? 오늘, 당신의 논리는 어떤 감정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