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시간을 내어 이 질문에 답해주시겠어요?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한가요?"
아마 잠시 멈칫하며 지난 며칠, 혹은 몇 주간의 일들을 떠올려보셨을 겁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친구와의 즐거운 대화, 어제 먹었던 맛있는 저녁, 혹은 통장 잔고 같은 것들 말이죠. 우리의 행복감이란 이처럼 수많은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주 간단한 장치 하나로 당신의 행복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오늘은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이 발견한, 우리 뇌의 놀랍고도 기묘한 착각, '기분 휴리스틱(Mood Heuristic)'의 세계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질문 하나 바꿨을 뿐인데... 행복도가 뒤바뀐 실험
이야기는 독일의 한 대학에서 진행된 흥미로운 설문조사에서 시작됩니다. 연구진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A 그룹에게 던진 질문 순서:
1.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한가요?
2. 당신은 지난달에 데이트를 몇 번 했나요?
B 그룹에게 던진 질문 순서:
1. 당신은 지난달에 데이트를 몇 번 했나요?
2.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한가요?
A 그룹의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데이트 횟수와 행복감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죠. 연애는 삶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행복 전체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B 그룹에서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데이트를 많이 한 학생일수록 자신이 매우 행복하다고 답했고, 데이트를 하지 못한 학생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질문의 순서를 바꾼 것만으로 학생들의 행복감이 실제로 변한 걸까요?
정답은 '기분 휴리스틱'에 있습니다
카너먼은 이 현상을 '기분 휴리스틱'으로 설명합니다. B 그룹 학생들은 행복에 대한 어려운 질문을 받기 직전, 자신의 연애 생활에 대한 질문을 먼저 받았습니다. 데이트를 많이 한 학생들은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외로움과 거절의 감정이 머릿속에 '점화(Priming)'된 상태였죠.
그 직후 "요즘 얼마나 행복한가요?"라는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을 받자, 그들의 뇌는 복잡한 계산을 하는 대신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바로 방금 전 떠올랐던 그 감정, 즉 '연애 생활에 대한 만족도'라는 더 쉬운 질문의 답으로 '삶 전체의 행복도'라는 어려운 질문의 답을 슬쩍 바꿔치기해버린 것입니다.
행복의 착각을 설계하는 '초점 착각'
이 기묘한 현상은 단순히 데이트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카너먼과 동료 연구자들은 이것이 인간이 판단을 내리는 근본적인 방식이며, 이를 '초점 착각(Focusing Illusion)'이라는 더 큰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Kahneman et al., Science, 2006).
초점 착각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Nothing in life is as important as you think it is, while you are thinking about it."
(인생에서 그 무엇도, 당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우리가 어떤 특정 요소(연애, 돈, 건강 등)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그 요소의 중요성을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부풀려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마치 행복의 전부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인지적 착각이죠.
"부자가 되면 더 행복해질까요?"라는 착각
초점 착각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로 '소득과 행복'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에게 "연봉이 1억인 사람과 5천만 원인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전자를 택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소득'이라는 단 하나의 요소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요? 물론 소득은 중요하지만, 우리의 행복은 출퇴근 시간, 친구와의 관계, 업무 스트레스, 건강 상태 등 소득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이지 않는 수많은 다른 요소들에 의해 훨씬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돈이 행복에 미치는 실제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행복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변덕스럽고, 순간의 기분과 우연히 떠오른 생각에 의해 쉽게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방금 상사에게 꾸중을 들은 직후에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것과, 주말에 멋진 곳으로 여행 갈 계획을 세운 직후에 평가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감정을 무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파도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당신의 기분을 지배하고 있는 그 생각, 당신의 행복 전체를 결정하고 있다고 믿는 그 '단 하나의 초점'은 정말로 당신의 삶 전체만큼 중요한 것일까요? 어쩌면 한 걸음만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저 지나가는 구름 한 점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