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배심원이라면,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어두운 밤, 한 도시에서 뺑소니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용의 차량은 택시. 현장에 있던 유일한 목격자는 택시가 '파란색'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밤이라 시야가 흐렸기 때문에, 법원은 목격자의 증언이 80%의 정확도를 가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이 사건의 배심원이 되어, 사고 택시가 파란색일 확률을 판단해야 합니다. 검찰은 당신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추가로 제공합니다. 바로 이 도시의 택시 현황입니다.
사건 파일 #1: 단순한 통계 정보
이 도시에서 운행되는 택시의 85%는 녹색 택시이고, 15%는 파란색 택시입니다.
자, 잠시 생각해 보세요. 목격자는 80%의 정확도로 '파란색'이라고 증언했지만, 애초에 파란색 택시는 도시 전체의 15%밖에 없습니다. 당신이라면 사고 택시가 파란색일 확률을 얼마로 보시겠습니까? (참고로, 베이즈 정리에 따른 정확한 확률은 41%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는 대신, "그래도 본 사람이 파란색이라는데?"라며 목격자의 증언(80%)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었을 겁니다. 실제로 이 실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15%라는 '기저율(base rate)' 정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그냥 무시해버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정보의 마법: 똑같은 85%가 전혀 다르게 들릴 때
그런데 만약, 검찰이 당신에게 제공한 정보가 약간 달랐다면 어땠을까요? 수학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이 정보를 한번 보시죠.
사건 파일 #2: 원인을 설명하는 이야기
두 택시 회사는 같은 수의 택시를 운행하지만, 도시 전체 택시 사고의 85%는 녹색 택시에 의해 발생합니다.
어떤가요? 똑같은 '85%'라는 숫자지만,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첫 번째 정보는 그저 '택시 색깔의 비율'이라는 건조한 통계였지만, 두 번째 정보는 즉각적으로 하나의 강력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세상에, 저 녹색 택시 운전사들은 완전 난폭한 미치광이들이 틀림없어!'
이제 당신의 머릿속에는 '난폭한 녹색 택시'라는 강력한 고정관념이 생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목격자의 '파란색' 증언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당신은 두 가지 상반된 단서를 놓고 훨씬 더 신중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 정보를 받은 사람들의 판단은 베이즈 정리의 결과(41%)와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차가운 '통계' vs 뜨거운 '이야기'
이것이 바로 '통계적 기저율'과 '인과적 기저율'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 통계적 기저율 (Statistical Base Rates): "도시 택시의 85%는 녹색이다"처럼, 어떤 집단에 대한 단순한 통계적 사실입니다. 우리의 뇌는 이 정보에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인과적 이야기'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무시해버립니다.
- 인과적 기저율 (Causal Base Rates): "사고의 85%는 녹색 택시가 낸다"처럼, 사건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정보입니다. '난폭함'이라는 원인이 제시되자, 우리의 뇌는 이 정보를 개별 사건에 즉시 적용하여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우리의 직관적인 뇌(시스템 1)는 인과관계로 엮인 이야기를 처리하는 데는 놀랍도록 능숙하지만, 맥락 없는 순수한 통계를 이해하는 데는 매우 서툽니다. 그냥 숫자는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기 때문이죠.
고정관념은 우리 뇌의 기본 작동 방식입니다
흔히 '고정관념'은 나쁜 단어로 여겨지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지극히 중립적인 개념입니다. 우리의 뇌가 '말', '냉장고', '경찰관'과 같은 범주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바로 고정관념, 즉 대표적인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난폭한 녹색 택시 운전사'라는 고정관념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정확한 판단을 이끈 것처럼, 고정관념은 세상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한 뇌의 효율적인 전략인 셈이죠. (물론, 이것이 사회적 맥락에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입니다.)
숫자를 이야기로 번역하는 능력
'택시 문제'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차가운 통계 수치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가 '왜' 그런 결과로 이어졌는지, 그 이면에 어떤 '원인'과 '이야기'가 숨어있는지를 함께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의 뇌는 건조한 85%라는 숫자는 외면하지만, '난폭 운전을 일삼는 85%의 운전사들'이라는 이야기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당신이 무언가를 설명해야 할 때, 기억하세요. 당신의 임무는 단순히 통계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계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