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굶주린 네 남자와 금기된 선택 🧭
혹시 재난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해 보신 적 없나요? "나라면 저 상황에서 저럴 수 있을까?" 좀비가 창궐한 도시, 식량이 떨어진 피난처. 우리는 스크린을 보며 주인공의 선택에 안도하거나 혀를 차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살기 위해서라면,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1884년, 영국 법정은 이 끔찍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진 비극. 바로 영국 법률사상 가장 끔찍하고도 중요한 판례로 기록된 미뇨넷 호 사건(The Mignonette Case)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기가 아닙니다. 법과 도덕,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지 그 근원을 파고드는 처절한 항해기록이죠.
1884년 5월, 선장 토머스 더들리(Thomas Dudley)를 포함한 네 명의 선원은 미뇨넷(Mignonette)이라는 요트를 타고 영국을 떠나 호주 시드니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희망봉에서 약 2,600km 떨어진 남대서양에서,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쳤고 그들은 1분 만에 침몰하는 배를 탈출해 작은 구명보트에 몸을 싣습니다(출처: The National Archives, UK).
망망대해 위, 그들에게 허락된 것은 순무 통조림 두 개뿐. 물도, 다른 식량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굶주림과 갈증은 극에 달했고, 죽음의 그림자가 보트 위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선장 더들리는 암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바다의 관습(custom of the sea)'을 꺼내 듭니다. 생존을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자는 것.
가장 약한 자의 비극, 리처드 파커 ⚖️
선택의 기로에 놓인 세 남자. 더들리, 에드윈 스티븐스, 그리고 에드먼드 브룩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17세의 고아 소년, 리처드 파커(Richard Parker)였습니다. 그는 경험을 쌓기 위해 배에 오른, 가장 어리고 약한 존재였죠. 바닷물을 마신 뒤 이미 병들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더들리는 제비뽑기를 제안했지만 브룩스는 반대했습니다. 결국 20일째 되던 날, 더들리는 스티븐스의 동의 하에 기도하던 소년 파커의 경동맥을 칼로 찔렀습니다. 살아남은 세 남자는 파커의 인육과 피로 나흘을 더 버텼고, 기적적으로 독일 선박에 의해 구조됩니다 (출처: A.W.B. Simpson, "Cannibalism and the Common Law", 1984).
여기까지만 보면, 극한 상황 속 비극적인 생존기로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구조된 선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숨기지 않았고, 많은 대중은 그들을 동정했습니다. 하지만 법의 잣대는 냉정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살인' 혐의로 기소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법정 드라마, R v Dudley and Stephens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 핵심 쟁점: 필요성의 항변 (Plea of Necessity)
변호인 측의 주장은 명료했습니다. "이들의 행위는 살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즉, 다른 선택지가 없는 극한 상황에서 법을 위반하는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이죠. 만약 파커를 죽이지 않았다면 네 명 모두 죽었을 것이고, 이는 더 큰 비극이라는 논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바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외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법은 왜 '필요'를 외면했는가?
만약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3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인 행위. 공리주의적 계산으로는 '이득'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판을 이끌었던 콜리지 경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법의 존엄성을 지키는 시험대로 보았습니다.
법정은 변호인 측의 '필요성의 항변'을 기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충격적일 만큼 단호했습니다. '필요'를 구실로 무고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법이 용인하기 시작하면, 그 기준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더 약한 자인지,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없는지를 판단하는 권한을 인간에게 줄 수 없다는 선언이었죠 (참고: Duke Law Scholarship, "The Survival Cannibalism Case").
"유혹과 싸우고 목숨을 버리는 것이 인간의 의무일 때가 있다. 전쟁에서의 의무가 그러하듯...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신성하다는 위대한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
- 존 콜리지 경, 최종 판결문 중 -
결국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여론의 동정 여론을 감안해, 형량은 6개월의 징역으로 감형되었죠. 이 판결은 미뇨넷 호 사건이 단순한 재판을 넘어, '법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법은 결과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요.
결론: 문명이라는 이름의 구명보트
미뇨넷 호 사건은 1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한정된 의료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배분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졌던 논쟁들 역시 미뇨넷 호의 또 다른 버전일지 모릅니다(참고: 서울경제, 2020).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사회, 이 법률 체계는 어쩌면 거친 세상의 파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거대한 '구명보트'와 같습니다. 그 안에서는 때로 비효율적이고 답답해 보이는 원칙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원칙들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해하는 망망대해로 내던져질지도 모릅니다.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괴물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살아남고 싶었던 평범한 인간이었을까요? 아마 정답은 없을 겁니다. 다만 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숭고한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법과 문명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1. 선원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A1. 👉 더들리와 스티븐스는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빅토리아 여왕의 재가를 통해 6개월 징역형으로 감형되어 복역 후 출소했습니다. 제안을 거부했던 브룩스는 증인으로 채택되어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Q2. '필요성의 항변'이 인정되는 경우는 전혀 없나요?
A2. 👉 현대 법체계에서도 '긴급피난'과 같이 필요성을 일부 인정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타인의 생명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재산상의 피해나 경미한 위법 행위에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미뇨넷 호 사건은 살인에 대해서는 필요성이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는 중요한 판례를 남겼습니다.
Q3. 이 사건이 트롤리 딜레마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A3. 👉 트롤리 딜레마는 추상적인 사고 실험이지만, 미뇨넷 호 사건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또한, 트롤리 딜레마는 '선택'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 이 사건은 이미 벌어진 행위에 대해 법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며, 법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