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상실을 '수용'하는 가장 논리적인 방법

우리가 삶의 예기치 못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새로운 통찰입니다.

불과 몇 년 전, 저는 식당 키오스크 앞에서 '그냥 말로 주문하면 안 되나요?'라며 당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색한 터치 몇 번보다, 정겨운 직원분의 목소리가 훨씬 편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화면을 누르고, QR코드로 인증하며,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말을 겁니다.

참 이상하죠. 우리는 그렇게나 어색해하던 신기술을 결국엔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에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어 예기치 못한 실패, 어긋나버린 관계,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단점 같은 것들은 그토록 수용하기 어려운 걸까요? 챗GPT의 업데이트는 환영하면서, 내 삶의 ‘예상치 못한 업데이트’ 앞에서는 왜 그토록 저항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까요?

저는 오늘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아주 의외의 장소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바로 IT와 경영학 분야에서 수십 년간 사용되어 온 ‘기술수용모델(Technology Acceptance Model, TAM)’입니다. 이 차가운 이론 속에, 어쩌면 우리의 뜨거운 마음을 다독일 ‘수용의 기술’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기술, 쓸만해? 그리고 쉬워?" - 모든 수용의 시작, TAM 💡

기술수용모델(TAM)은 유용성과 용이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질문으로 이루어집니다.

1989년, 프레드 데이비스(Fred Davis)는 "사람들은 왜 특정 정보 기술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술수용모델(TAM)을 제시했습니다. 수많은 후속 연구를 통해 증명된 이 모델의 핵심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합니다. 우리가 어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지는 단 두 가지 핵심 요소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1. 지각된 유용성 (Perceived Usefulness): "그래서 이 기술을 쓰면 내 일이나 삶이 얼마나 더 나아지는데?"
  2. 지각된 용이성 (Perceived Ease of Use): "그런데 이거 사용하는 게 복잡하고 어렵지는 않아?"

우리가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이유는 '재미있는 콘텐츠'라는 확실한 유용성이 있고, '클릭 몇 번'만으로 쉽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사용법이 너무 복잡한 앱은 외면받죠. 결국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리 뇌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긍정적인 답을 얻어가는 과정인 셈입니다.

내 인생에 '수용의 기술'을 적용하는 법: 고통의 유용성과 용이성 🌱

자, 이제 이 모델을 우리 삶에 적용해 봅시다. 당신이 지금 받아들이기 힘든 '어떤 사건' (실패, 이별, 상실 등)을 하나의 '신기술'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달갑지 않은 기술을 우리는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요?

1단계: '고통의 유용성'을 재정의하기

가장 먼저 우리는 '지각된 유용성'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물론 고통 그 자체가 유용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역설적으로 내 삶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바꿔보는 겁니다. 가령, 쓰라린 이별을 겪었다면 그 경험은 나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프로젝트에 실패했다면, '나의 치명적인 약점과 보완해야 할 점'을 알려주는 소중한 컨설팅이 될 수 있죠. 이것이 바로 원치 않는 '사건'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부정적 경험의 '유용성'을 스스로 재정의하는 수용의 기술 첫 번째 단계입니다.

2단계: '수용의 용이성'을 높이는 환경 설계하기

다음은 '지각된 용이성'입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수용의 과정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만들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해야 합니다. 어려운 기술을 배울 때 우리는 설명서를 읽고(정보 탐색),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며(사회적 지지), 쉬운 기능부터 차근차근 익혀나갑니다(단계적 접근). 삶의 고통을 수용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써보거나(기록), 믿을 수 있는 친구나 전문가에게 털어놓고(상담), 명상이나 운동처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 무너진 일상을 지탱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고통을 다루는 것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환경 설계입니다.

'수용'을 넘어 '활용'으로: 당신은 인생의 얼리어답터입니까? 🚀

'혁신 확산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속도에 따라 혁신가(Innovators), 얼리어답터(Early Adopters), 후기 수용자(Late Majority), 그리고 지각수용자(Laggards) 등으로 나뉩니다(출처: brunch.co.kr/@drytree21/172).

삶의 예기치 못한 변화 앞에서 당신은 어떤 유형에 가깝나요? 변화의 의미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삼는 '인생의 얼리어답터'인가요, 아니면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지각수용자'인가요?

수용의 기술은 단순히 고통을 참고 견디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변화 속에서 '유용성'을 찾아내고,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며, 결국 그 경험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도약하는 매우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과정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새로운 업데이트를 허락하십시오.

자주 묻는 질문(FAQ) ❓

Q. 기술수용모델(TAM)을 삶에 적용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가장 큰 차이는 '선택권'의 유무입니다. 기술은 우리가 사용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지만, 삶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고통스러운 사건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술 수용이 '외부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삶의 수용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더 깊은 내면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Q. 머리로는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땐 어떻게 하죠?

A.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수용'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수용의 용이성'을 높이는 작은 행동들입니다. 억지로 '괜찮다'고 되뇌기보다, 지금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글로 써보거나, 산책을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등 감정을 환기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하나요? 부당한 일이나 불의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인가요?

A.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수용'은 '체념'이나 '굴복'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부당한 대우를 받은 현실과 그때 느낀 나의 분노'는 수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부당한 '행위' 자체를 용납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감정과 현실을 명확히 수용한 후에야, 그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건강하고 현명한 다음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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