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야 '사랑'이 보인다: 성숙한 관계를 위한 심리학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

"너랑은 가끔, 대화하기가 참 어려워."

혹시 연인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혹은 반대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행동에 "대체 왜 저러는 걸까?"라며 답답함을 느낀 적은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깊이 연결되길 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계는 종종 서로를 가장 ‘어려운 존재’로 느끼게 만드는 무대가 되곤 합니다.

우리는 이럴 때 흔히 '성격 차이'라는 편리한 말로 상황을 덮어버리거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며 관계의 문을 닫을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지혜를 빌려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하려 합니다. 어쩌면 당신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이유는 상대방이나 성격 탓이 아니라, 아직 당신이 ‘나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이 글은 단순히 좋은 연애를 하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아닙니다. 관계라는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미성숙한 사랑의 패턴을 끊어낸 뒤, 두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는 근본적인 여정이 될 것입니다.

1. 당신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을 착각하고 있다 🎨

우리는 흔히 사랑을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 강렬한 감정에 ‘빠지는’ 것. 그래서 우리는 내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나의 결핍을 채워줄 완벽한 상대를 찾아 헤매곤 합니다. 하지만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이런 태도가 사랑에 대한 가장 큰 오해라고 일축합니다.

프롬에게 사랑은 우연히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지식과 노력이 필요한 ‘기술(Art)’입니다. 마치 그림을 그리고 집을 짓는 법을 배워야 하듯, 사랑 또한 배워야 한다는 것이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황홀경은 사랑의 시작일 뿐, 진정한 사랑은 그 이후의 ‘사랑하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미성숙한 사랑은 "내가 사랑받기 때문에 상대를 사랑한다"는 자기중심적 거래에 가깝습니다. 상대가 나의 외로움, 불안, 욕구를 채워주기를 바라죠. 반면, 성숙한 사랑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가 필요하다"는 능동적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나의 내면이 충만하기에, 그 사랑을 ‘주기 위해’ 상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사랑에 빠져있나요, 아니면 사랑을 하고 있나요?

2. 성숙한 사랑의 4가지 기술: 당신의 사랑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

그렇다면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는 사랑이 네 가지 핵심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네 가지를 통해 현재 당신의 관계가 얼마나 성숙한지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1. 관심(Care): 상대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입니다. "오늘 뭐 했어?"라는 질문 속에 상대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그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행동이 바로 '관심'의 표현입니다.
  2. 책임(Responsibility): 상대의 필요에 기꺼이 '응답(Respond)'하는 능력입니다. 상대가 힘들 때 곁을 지켜주는 것, 그의 감정적 요구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바로 책임입니다. 이는 의무감과는 다릅니다.
  3. 존중(Respect): 상대를 내 소유물이나 욕구 충족의 도구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고유한 개인으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그의 생각과 가치, 그리고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죠.
  4. 이해(Knowledge): 상대의 피상적인 모습 너머, 그의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노력입니다. 상대의 두려움은 무엇인지, 그의 깊은 상처는 어디서 왔는지 알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 네 가지 요소가 빠진 사랑은 쉽게 집착(존중 없는 관심)이나 통제(책임 없는 관심)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3. 모든 기술의 전제 조건: ‘나의 진짜 모습’을 아는 용기 🧭

이제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은 오직 한 가지가 전제될 때만 가능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즉 자기 인식(Self-Awareness)입니다.

유튜브 채널 '인생학교'의 통찰처럼,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관계를 시작합니다. 파트너는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왔던 ‘나의 진짜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죠. 이때 우리는 당황하며 거울을 깨버리려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그 거울을 똑바로 들여다봅니다.

  • 나의 감정 패턴 알기: "나는 어떨 때 화가 나고, 어떨 때 불안해지는가?" 자신의 감정 스위치가 언제 켜지는지 아는 사람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상대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나의 욕구와 한계 알기: "나는 관계에서 무엇을 가장 원하며, 무엇은 절대 참을 수 없는가?" 자신의 욕구를 아는 사람은 상대에게 억지로 맞추며 자신을 잃지 않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상대에게 무리한 기대를 하지도 않죠.
  • 나의 ‘어려운’ 부분 인정하기: 파트너가 나의 어떤 점을 가장 힘들어하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내가 이런 면에서 너를 힘들게 했구나”라고 인정하는 용기는, 상대에게 당신이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가장 큰 신뢰를 줍니다.

이처럼 ‘나의 진짜 모습’을 아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를 온전히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 과정입니다. 내가 나 자신으로 바로 설 때, 비로소 상대방도 그의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출처: 정신의학신문, 싸이타임즈).

자주 묻는 질문(FAQ) ❓

Q1. 자기 자신을 아는 것과 이기적인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A1. 👉 자기 인식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다릅니다. 이기심이 자신의 욕구를 타인을 희생시켜서라도 채우려는 것이라면, 자기 인식은 나의 욕구와 감정을 정확히 알아야 타인의 욕구와 감정도 존중할 수 있다는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나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에게도 건강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Q2.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너무 이상적인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A2. 👉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프롬 역시 사랑을 평생에 걸쳐 연마해야 할 '기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성숙한 사랑을 하겠다'는 방향성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 그 자체입니다. 네 가지 기술을 길잡이 삼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사랑을 하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관계는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Q3. 상대방이 미성숙한데, 저 혼자 노력해서 관계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A3. 👉 관계는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과 같기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나의 스텝을 바꾸고 성숙한 태도를 보일 때, 상대방도 그 변화를 느끼고 새로운 스텝을 배울 기회를 갖게 됩니다. 나의 성숙한 노력이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초대장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때로는 서툴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성숙한 관계는 ‘어려운’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의 ‘어려움’을 기꺼이 마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려는 두 사람의 의지 위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의 시작은 바로 ‘나의 진짜 모습’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당신의 마음속 거울부터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안에 비친 당신의 진짜 모습 속에,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모든 해답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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