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셀리그먼의 강아지 실험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 비관주의는 학습된다

스스로를 가두는 투명한 감옥, 그 문은 사실 잠겨있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해봤자 안 될 텐데'라는 목소리가 먼저 들려오나요?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결국 또 상처받겠지'라며 미리 선을 긋고 있나요?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나 같은 사람이 뭘'이라며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만약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스스로를 '원래 비관적인 사람' 혹은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해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그 생각이, 그 익숙한 체념이, 사실은 당신의 본래 성격이 아닐 수 있다는 조금은 충격적인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 뇌에 깊이 새겨진 일종의 심리적 흉터, 학습된 비관주의(Learned Pessimism)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학습'된 것이기에 '다시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오해 바로잡기: 비관은 성격이 아니라 '학습'된 습관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비관적인 태도를 바꿀 수 없는 천성이라 여기며 자포자기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의 역사를 바꾼 한 연구는 이러한 통념이 얼마나 큰 오해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학습된 비관주의의 뿌리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모든 것은 한 심리학자의 강아지 실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1967년, 저명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과 그의 동료 스티븐 마이어(Steven Maier)가 진행한 한 강아지 실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출처: SimplyPsychology). 실험은 세 그룹의 개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죠.

  • 1그룹 (통제 집단): 어떤 전기 충격도 받지 않았습니다.
  • 2그룹 (통제 가능 집단): 전기 충격을 받았지만, 코로 레버를 누르면 스스로 충격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 3그룹 (통제 불능 집단): 2그룹과 똑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레버를 눌러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즉, 고통을 피할 방법이 전혀 없었죠.

진짜 실험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세 그룹의 개들을 낮은 칸막이로 나뉜 상자로 옮겼습니다. 바닥 한쪽에서 전기 충격이 오면, 칸막이 너머로 점프하여 쉽게 피할 수 있는 환경이었죠. 예상대로 1그룹과 2그룹의 개들은 충격이 오자마자 재빨리 칸막이를 넘어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3그룹의 개들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달랐습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눈앞에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망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을 그대로 감내했습니다. 이전의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이 고통을 멈출 수 없다"는 무기력을 '학습'해버렸기 때문입니다(출처: APA Dictionary).

🌿 비관의 각본을 다시 쓰는 법: '학습된 낙관주의'로의 전환

다행인 점은, 이 비관의 각본을 우리가 직접 다시 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틴 셀리그먼은 학습된 비관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학습된 낙관주의(Learned Optimism)'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핵심은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1. 내 안의 '자동 해석'을 의심하고 논박하세요.

어떤 부정적인 사건(Adversity)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비관적인 믿음(Belief)을 떠올리고, 그 결과로 무력감(Consequence)을 느낍니다. 이 고리를 끊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내 메시지에 답이 없다(A)'는 사건에 대해 '나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B)'라는 자동 해석이 떠오른다면, 즉각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정말 그럴까? 다른 증거는 없나? 혹시 바쁜 일이 있거나 휴대폰을 못 본 건 아닐까?" 이처럼 자동화된 비관적 해석에 적극적으로 논박(Disputation)하는 훈련만으로도 생각의 회로는 점차 바뀌기 시작합니다.

2. '통제 가능한 영역'에 의도적으로 집중하세요.

학습된 비관주의는 통제 불가능한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통제감'을 되찾는 것입니다.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 청소하기, 미뤄뒀던 이메일 한 통 보내기, 5분 산책하기 등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시작과 끝을 온전히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을 의도적으로 해내는 것입니다.

이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쌓이면 "나의 행동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이 회복되고, 무기력의 안개는 서서히 걷히게 됩니다.

3. 실패를 '영구적인 낙인'이 아닌 '일시적인 사건'으로 재정의하세요.

비관주의자들은 실패를 마주했을 때 "나는 원래 안돼"라며 영구적이고(Permanent), 모든 영역에 해당되며(Pervasive), 자신의 탓(Personal)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낙관주의자들은 실패를 "이번에는 운이 나빴네" 혹은 "이 방법이 틀렸나 보다"라며 일시적이고(Temporary), 특정하며(Specific), 외부적인 요인(External)으로 해석합니다.

실패했을 때, 스스로에게 "이것이 나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가? 아니면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인가?"라고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 관점의 전환이 당신을 무기력의 늪에서 건져낼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당신을 가둔 감옥의 문은, 사실 열려있습니다

학습된 비관주의는 우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익힌 생존 방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더 큰 상처를 피하기 위해, 더 큰 실망을 겪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마음의 흔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당신을 가두고 있던 그 감옥의 문은, 사실 잠겨있지 않았다는 것을. 과거의 경험이 새겨놓은 무기력의 사슬은 끊어낼 수 있으며,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익숙한 속삭임은 당신의 진짜 목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은 비관을 학습했던 것처럼, 낙관 또한 학습할 수 있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오늘부터 아주 작은 통제감을 되찾는 시도를, 비관적인 자동 해석을 향한 작은 의심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용기 있는 한 걸음이, 당신이 잊고 있던 삶의 수많은 가능성을 다시 열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