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날 가족과, 혹은 가장 가까운 연인과 말다툼 한번 안 해본 분 계실까요? 분명 좋은 의도로 시작한 대화가 어느새 고성이 오가는 전쟁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들었을지 모릅니다. 이 글은 당신을 소모적인 논쟁의 늪에서 구해줄 가장 강력한 기술, RISA 대화법을 소개합니다.
혹시 이런 혈압 오르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시죠? 명절에 모인 가족 식사 자리, 누군가 툭 던진 정치 이야기 하나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지고, 급기야 고성이 오갑니다. 연인과의 데이트에서는 "저녁 뭐 먹을까?"라는 사소한 질문이 "넌 날 존중하지 않아!"라는 거대한 비난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대화에 서툰 걸까요? 왜 우리의 선의는 번번이 오해받고, 대화는 전쟁으로 끝나버리는 걸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원인을 '말솜씨'의 부족이나 '성격 차이'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이길 수 없는 싸움,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논쟁에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 지긋지긋한 소모적인 논쟁의 늪에서 당신을 구해줄, 세계 토론 챔피언 보서(Bo Seo)가 제안하는 강력하면서도 우아한 비밀 병기, RISA 대화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어떤 싸움에 뛰어들고 어떤 싸움을 현명하게 피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당신의 인간관계를 지켜줄 가장 현실적인 '전략 지도'입니다.
싸움의 홍수를 막는 4개의 댐: RISA 대화법이란? 댐
우리는 흔히 논쟁을 하나의 거대한 전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토론가들은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마치 댐의 수문을 점검하듯 4가지 필터를 거칩니다. 이 필터가 바로 RISA 대화법의 핵심입니다(출처: Big Think, Bo Seo). 이 4개의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만, 그 논쟁은 비로소 시간과 감정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생산적인 대화가 될 수 있습니다.
RISA 프레임워크 4단계
1. R (Real): 이 논쟁은 '진짜' 문제인가?
2. I (Important): 이 논쟁은 '중요한' 문제인가?
3. S (Specific): 이 논쟁은 '구체적인' 문제인가?
4. A (Aligned): 우리의 '목표'는 일치하는가?
1. R (Real): 이 논쟁은 ‘진짜’ 문제인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싸우려는 이 문제가 과연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오해나 감정의 착각에서 비롯된 허상은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 나쁜 예: 연인이 약속 시간에 10분 늦었습니다. 당신은 "넌 항상 늦어! 날 무시하는 거지?"라며 분노를 터뜨립니다. 여기서 '날 무시한다'는 것은 당신의 해석일 뿐,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짜' 문제입니다.
- 좋은 예: "네가 10분 늦어서 내가 기다렸다는 건 '진짜' 사실이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되면 논쟁은 감정적인 비난이 아닌, 사실에 기반한 문제 해결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2. I (Important): 이 논쟁은 ‘중요한’ 문제인가?
모든 싸움이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변기 뚜껑을 올리고 내리는 문제로 연인과 파국을 맞이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단계는 감정의 소모를 막는 가장 중요한 필터입니다. 이 논쟁이 정말 우리의 관계나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다면, 과감히 에너지를 아끼고 넘어가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3. S (Specific): 이 논쟁은 ‘구체적인’ 문제인가?
혹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걱정이야"라며 시작된 논쟁이 좋은 결말로 끝나는 것을 보신 적 있나요? 거의 없을 겁니다. 논쟁의 주제가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이면, 대화는 필연적으로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질 뿐입니다.
4. A (Aligned): 우리의 ‘목표’는 일치하는가?
마지막 관문이자,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지금 이 대화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가? 즉,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결론을 찾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만약 한쪽이라도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상처를 주거나, 자신의 우월감을 증명하는 것이 숨겨진 목표라면, 그 대화는 시작부터 실패가 예정된 것입니다.
실전편: '강철 인간'이 되어 대화를 지배하는 법 🦾
RISA 대화법을 통과한 논쟁이라도,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말을 왜곡하고 가장 약한 고리만 공격하는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Strawman Fallacy)'에 빠지곤 합니다(참고: 이재원, 논리학). 하지만 세계 챔피언은 정반대의 전략을 사용합니다. 바로 '강철 인간(Steel-manning)' 기법입니다.
이는 상대방의 주장을 내가 반박하기 쉬운 우스꽝스러운 버전으로 만드는 대신,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버전으로 내가 다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가장 강력한 주장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주장은 이런 것 같군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당신의 핵심 논리는 A와 B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일리가 있네요. 다만 C에 대해서는 제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내 주장의 격을 높이는 최고의 기술입니다. 상대는 자신의 말이 경청받고 있다고 느끼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논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결국 논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RISA 대화법의 진정한 의미는 상대를 찍어 누르는 승리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싸움을 걸러내고, 중요한 싸움은 더 현명하게 만들며, 나와 상대방 모두가 성장하는 '우리 모두의 승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다음 대화에 이 4개의 댐을 세워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 이전과는 전혀 다른, 놀랍도록 평온하고 생산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Q. RISA 대화법을 모든 상황에 적용해야 하나요?
A. 👉 아닙니다. RISA는 모든 대화에 적용하는 만능 도구가 아니라, 갈등의 소지가 있는 '중요한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사용하는 '필터'입니다. 일상의 가벼운 대화까지 검열할 필요는 없습니다.
Q. 상대방이 RISA를 모르는데 저 혼자 사용해도 효과가 있을까요?
A. 👉 네, 그렇습니다. RISA의 가장 큰 힘은 상대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접근법을 바꾸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진짜 중요하고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면, 상대방도 그 프레임에 맞춰 대화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Q. 감정이 너무 격해졌을 때도 RISA를 사용할 수 있나요?
A. 👉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RISA를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지금은 너무 감정적이니,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하자"고 제안하는 것이 RISA의 첫 단계인 '진짜 문제인가?'를 실천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가짜 문제'를 걷어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