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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집과 직장 밖을 헤매는가?
노트북 하나 들고 집 근처 카페로 ‘출근’해 본 경험, 다들 있으시죠?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동네 서점을 어슬렁거리거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밤새워 토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이토록 집(Home)과 직장(Work)이 아닌 다른 공간을 갈망하는 걸까요?
저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버린 ‘마을’을 설계하는 커뮤니티 건축가입니다. 저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립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닌, ‘공간의 부재’에서 비롯된 사회적 질병이라고 진단합니다.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는 이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집(제1의 공간)과 직장(제2의 공간)을 넘어,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입니다.
오늘 우리는 올든버그의 눈을 빌려, 과거 우리 공동체의 심장이었던 이 위대한 공간들이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파편화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이 ‘영혼의 안식처’를 다시 발견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탐험해 볼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는 ‘제3의 공간’이 있습니까?
레이 올든버그는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The Great Good Place에서, 건강한 개인과 사회는 세 가지 종류의 공간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 제1의 공간 (The First Place): 사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집’
- 제2의 공간 (The Second Place):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직장’
- 제3의 공간 (The Third Place): 집과 직장 사이에 위치하며, 비공식적인 만남과 자유로운 교류가 일어나는 ‘공동체의 거실’
과거의 동네 사랑방, 오래된 다방, 이발소, 마을 광장 등이 바로 이 역할을 했습니다. 이곳은 특별한 목적 없이도 누구나 어슬렁거리며 들를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대화와 만남을 통해 소속감과 유대를 형성하는 ‘사교의 장’이었습니다(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2019). 이곳에서 우리는 직함이나 역할의 부담 없이, 그저 한 명의 이웃이자 동네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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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심장이 멈춘 시대
문제는 현대 사회, 특히 도시화와 자동차 문화의 발달로 이 ‘제3의 공간’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집과 직장이라는 두 점만을 셔틀처럼 오가며, 그 사이의 비공식적인 교류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제1의 공간과 제2의 공간의 경계마저 무너뜨리며, 우리의 삶을 더욱 고립된 섬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더 외로워졌습니다.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올든버그의 통찰은 그 반대를 말합니다. 좋은 관계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관계가 싹트는 환경’, 즉 제3의 공간이 먼저 주어질 때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만의 ‘제3의 공간’을 발견하고, 만들고, 가꾸는 법
다행히도, 우리는 사라진 과거를 한탄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의식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 ‘제3의 공간’을 다시 설계하고 초대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 두 가지 차원에서 모두 가능합니다.
1. 물리적 공간: ‘단골’이 되어라
- 나만의 아지트 찾기: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주인의 얼굴을 익힐 수 있는 작은 동네 카페나 서점을 찾아보세요. 목적 없이 들러 책 한 권을 읽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 공간의 일부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 취미 기반의 커뮤니티 참여: 독서 모임, 달리기 클럽, 공방 클래스 등 당신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모임에 참여하세요. 공통의 관심사는 어색함을 녹이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끄는 최고의 촉매제입니다.
- ‘정기적인 비정기성’: 매주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 같은 장소를 방문해 보세요. 의도하지 않아도 반복되는 마주침 속에서 자연스러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2. 디지털 공간: ‘디지털 캠프파이어’를 피워라
제3의 공간은 반드시 물리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잘 설계된 디지털 공간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심장이 될 수 있습니다(Springer, 2022).
- 광장보다 캠프파이어: 모두에게 열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광장’보다는, 특정 관심사를 공유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비공개 슬랙(Slack) 채널, 디스코드 서버, 비공개 포럼 같은 ‘캠프파이어’를 찾아보세요.
- 소비자에서 참여자로: 단순히 정보를 얻기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먼저 질문하고, 의견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글에 진심 어린 댓글을 다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보세요.
- 나만의 공간 직접 만들기: 만약 당신이 원하는 커뮤니티를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보는 용기를 내십시오. 작은 단체 채팅방을 여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누군가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제3의 공간’을 제공하는 위대한 건축가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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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연결을 갈망하도록 태어났습니다. 현대 사회의 고립감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공동체의 심장, 즉 ‘제3의 공간’을 앗아간 사회 구조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열쇠를 손에 쥐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일상을 둘러보십시오. 당신의 발길이 머물고, 영혼이 쉬어갈 수 있는 제3의 공간은 어디입니까? 그곳을 발견하고, 가꾸고, 때로는 직접 만들어나가는 의도적인 노력 속에서, 당신은 잃어버렸던 연결의 감각을, 그리고 더 풍요로운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 제3의 공간은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만든 용어로, 제1의 공간인 집과 제2의 공간인 직장을 제외한, 비공식적인 사회적 교류가 일어나는 모든 공공장소를 의미합니다. 카페, 동네 술집, 서점, 공원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 제3의 공간이 현대 사회에 왜 중요한가요?
- 현대 사회는 개인화와 원격 근무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습니다. 제3의 공간은 이러한 고립을 막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유대감을 형성하고,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도 제3의 공간이 될 수 있나요?
-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일종의 '공공 거실'처럼 사용하며 제3의 공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든버그가 강조한 본래의 의미는, 단골손님과 주인이 서로를 알고, 더 깊은 유대감이 형성되는 지역 기반의 독립 상점에 더 가깝습니다.
- 디지털 커뮤니티가 정말 물리적 공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 완벽히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리적 제약이나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제3의 공간은 소속감과 연결을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창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얼마나 깊이 있고 진정성 있는 상호작용이 일어나느냐에 있습니다.
- 저만의 제3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관심사를 주제로 작은 독서 모임을 열거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모여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중요한 것은 '누구나 환영받는다'는 개방적인 분위기와, '서열이나 목적 없는' 수평적인 대화의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