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현실을 만드는 보이지 않는 감독, 시스템 1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그 놀라움. 그런데 얼마 뒤, 또 다른 낯선 곳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마주쳤을 땐 어쩐지 처음만큼 놀랍지는 않았던 경험 말입니다. 마치 우리 뇌가 "아, 이 사람은 원래 이렇게 불쑥 나타나는 사람이구나"하고 멋대로 결론 내린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경이로운 마술의 한 장면입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개의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특히 오늘 이야기할 시스템 1은 잠시도 쉬지 않고 당신의 개인적인 세계 모델을 유지하고 업데이트하는, 보이지 않는 감독과도 같습니다. 이 감독은 당신이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 행동, 결과들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해 '정상적인 것'의 기준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모델은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당신의 모든 판단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죠.
놀라움의 두 가지 얼굴: 능동적 기대와 수동적 기대
우리의 정신 활동에서 '놀라움'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민감한 지표입니다. 이 놀라움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능동적 기대'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우리는 현관문 소리와 뒤이어 들릴 익숙한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기다립니다. 만약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놀라게' 되죠.
하지만 훨씬 더 거대한 범주를 차지하는 것은 '수동적 기대'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기다리진 않지만, 막상 일어나도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굳이 떠올릴 필요조차 없는 사건들이죠. 예를 들어 길을 걷다 고양이를 보는 것처럼요. 이런 수동적 기대야말로 우리 뇌가 구축한 '정상 세계'의 광대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단 한 번의 경험이 '정상'의 기준을 바꾼다
몇 년 전, 제 아내와 저는 호주의 작은 섬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우연히 '존'이라는 이름의 심리학자 지인을 만났고, 우리는 신기한 우연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약 2주 뒤, 런던의 한 극장에서 불이 꺼진 뒤 들어온 남자가 제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중간 휴식 시간에 불이 켜졌을 때, 저는 제 옆에 앉은 사람이 또 '존'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우연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첫 만남 때보다 덜 놀라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 번째 만남이 우리 뇌 속 '존'에 대한 개념을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해외여행 중에 불쑥 나타나는 심리학자'가 된 것이죠.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았지만, 우리의 시스템 1은 이미 이 기묘한 우연을 거의 '정상적인' 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만약 그때 존이 아닌 다른 지인을 만났다면 훨씬 더 크게 놀랐을 겁니다. 확률적으로는 수백 명의 지인 중 아무나 만나는 것이 존을 다시 만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의 시스템 1에게는 '존을 만나는 것'이 더 정상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인과관계의 자동 탐색: 뇌는 어떻게 이야기를 만드는가
우리의 시스템 1은 흩어진 정보 조각들을 연결해 그럴듯한 인과관계 이야기를 만드는 데 매우 능숙합니다. 다음 문장을 한번 보시죠.
"뉴욕의 붐비는 거리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 후, 제인은 지갑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나중에 '소매치기'라는 단어를 '풍경'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강하게 연관 지어 떠올립니다. 문장에는 없었던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사라진 지갑', '뉴욕', '붐비는 거리'라는 아이디어들이 합쳐지자, 시스템 1은 즉시 '소매치기'라는 가장 그럴듯한 원인을 찾아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완성해버린 것입니다.
당신의 시스템 1을 직접 경험해보세요: 모세의 착각
이 현상이 얼마나 강력한지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유명한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의 착각(Moses Illusion)'입니다.
"모세는 각 종류의 동물을 몇 마리씩 방주에 태웠을까요?"
이 질문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동물을 방주에 태운 것은 모세가 아니라 노아였죠. 왜 우리는 이 오류를 쉽게 알아채지 못할까요? '동물'과 '방주'라는 단어가 성경적 맥락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모세'는 비정상적인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모세'와 '방주' 사이의 연상적 일관성을 감지하고 질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시스템 1이 이성적인 시스템 2의 감시를 교묘하게 피해 가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결국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세상의 객관적인 모습이라기보다, 우리 뇌 속의 보이지 않는 작가, 시스템 1이 끊임없이 쓰고 수정하는 '정상 세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시스템은 놀라움을 통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조정하고, 흩어진 사건들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내어 일관된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이 강력하고 자동적인 시스템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직관과 판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때로는 왜 비합리적인 믿음을 갖게 되는지 깨닫게 되는 것이죠. 당신의 뇌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펼쳐지고 있는 이 경이로운 창조 과정을 한번쯤은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