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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았던 사람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 없었나요? 첫인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명문대를 나왔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좋게 포장되는 경험 말입니다. 어쩌다 실수를 해도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감싸주고, 심지어는 관찰한 적 없는 성실함이나 정직함까지 당연히 갖추었을 거라 믿어버리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그가 하는 모든 선한 행동조차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야"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의 강력한 인상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 현상, 우리는 이것을 심리학에서 '후광 효과(Halo Effect)'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이 강력하고도 위험한 마음의 착각, 첫인상이라는 후광이 어떻게 우리의 판단을 송두리째 지배하는지, 그리고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는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단어의 순서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때
후광 효과의 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고전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의 연구입니다. 그는 두 집단에게 '앨런'과 '벤'이라는 두 가상 인물에 대한 성격 특성을 나열하고 그들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두 인물의 성격 특성이 완전히 동일하고 순서만 달랐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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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vs 벤: 당신의 마음은 누구에게 향하나요?
- 앨런: 똑똑한 - 근면한 - 충동적인 - 비판적인 - 고집 센 - 질투심 많은
- 벤: 질투심 많은 - 고집 센 - 비판적인 - 충동적인 - 근면한 - 똑똑한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앨런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똑똑하고 근면한' 사람이라는 첫인상이 만들어지자, 뒤따르는 '고집 센'이라는 특성은 '줏대 있는' 것으로, '비판적인'은 '통찰력 있는' 것으로 좋게 해석되었습니다. 반면, '질투 많고 고집 센' 사람으로 시작한 벤의 '똑똑함'은 오히려 '교활하고 위험한' 속성으로 전락해버렸죠.
이것이 바로 후광 효과의 본질입니다. 첫인상은 단순히 좋은 점수를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뒤에 오는 모든 정보의 '의미'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제 점수는 정말 공정했을까요?" 한 교수의 불편한 고백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과거에 오랫동안 이 후광 효과의 함정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의 서술형 시험을 채점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한 학생의 답안지를 받으면, 그 학생이 쓴 1번 답안부터 마지막 답안까지 순서대로 읽고 점수를 매기는, 지극히 '상식적인'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 채점 결과는 학생별로 놀라울 정도로 점수 분포가 '균일'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모든 문제에서 높은 점수를, 다른 학생은 모든 문제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뚜렷했죠.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혹시 내가 첫 번째 문제의 점수로 생긴 인상 때문에, 나머지 문제들을 채점할 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분명히 이 학생은 1번 문제를 이렇게 잘 썼는데, 2번 문제에서 이런 사소한 실수를 할 리가 없어. 뭔가 깊은 뜻이 있겠지."
이런 생각이 바로, 학생의 머리 위에 씌워진 '후광'이었습니다. 이는 제가 학생들에게 약속했던 '공정한 평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새로운 채점 방식
저는 즉시 채점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한 학생의 답안지를 순서대로 보는 대신, 모든 학생의 '1번 문제' 답안지만을 전부 채점했습니다. 그리고 그 점수를 답안지 뒷면에 아무도 볼 수 없게 기록해두었죠. 그 후에야 모든 학생의 '2번 문제' 답안지를 채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채점에 대한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극심한 '불편함'을 계속해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1번 문제에서 최고점을 줬던 학생이 2번 문제에서는 낙제에 가까운 답안을 제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한 학생의 점수가 극과 극을 오갔고, 저의 이전 채점이 얼마나 '가짜 일관성'에 기댄 것이었는지를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제가 비로소 '진짜 평가'를 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후광 효과를 이기는 단 하나의 무기: 오류의 비상관화
제가 채점 방식을 바꾼 것은 '오류의 비상관화(Decorrelate error)'라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각각의 평가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한 학생의 1번 답안을 채점할 때 저지른 (어쩔 수 없는) 주관적 오류가, 2번 답안을 채점할 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한 것이죠.
일상에서 '오류의 비상관화'를 적용하는 법
이 원리는 비단 시험 채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회의나 면접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 회의 전, 각자의 의견 먼저 적기: 어떤 안건에 대해 토론하기 전에, 모든 참석자가 자신의 핵심 의견을 몇 문장으로 미리 적어서 제출하게 하세요. 이렇게 하면, 목소리가 크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의 첫 발언이 만들어내는 '후광 효과'에 모두가 휩쓸리는 것을 막고, 그룹의 집단 지성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여러 출처의 정보 독립적으로 확인하기: 어떤 정보의 진위를 판단할 때, 여러 기사나 자료를 동시에 열어놓고 비교하지 마세요. 하나의 자료를 끝까지 읽고 자신의 판단을 내린 뒤, 그 다음에 다른 자료를 독립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한 정보 소스가 만든 후광이 다른 정보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아줍니다.
결국 후광 효과는 빠르고 편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는 우리 뇌(시스템 1)의 본능적인 작동 방식입니다. 이것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마음의 함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판단의 순간에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