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똑똑한 당신도 가짜 뉴스를 믿을까? (스피노자가 예언한 확증 편향의 함정)

우리의 뇌는 진실을 확인하기 전에 일단 '믿도록' 설계되었습니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어떻게 오늘날의 가짜 뉴스 시대를 예견했는지,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우리의 '확증 편향'을 강화하여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지 그 충격적인 진실을 파헤칩니다.

"나는 절대 가짜 뉴스 같은 거에 안 속아" 라고 생각하시나요?

늦은 밤, 피곤한 몸을 소파에 누인 채 무심코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던 경험, 다들 있으시죠? 흥미로운 제목의 글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를 누릅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글이 사실은 교묘하게 조작된 '가짜 뉴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찝찝함.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믿음의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현상을 이미 17세기에 완벽하게 꿰뚫어 본 철학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스피노자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이토록 쉽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지, 즉 '확증 편향'의 늪에 빠지는 이유를 17세기 철학자의 지혜를 통해 파헤쳐보고, 이것이 21세기 소셜 미디어 시대에 왜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일단 믿고, 나중에 의심하라' : 우리 뇌의 기본 설정값

우리는 흔히 어떤 정보를 접하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신중하게 분석한 뒤에 믿음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빌려, 우리의 뇌는 정반대로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즉, 어떤 문장을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일단 그것을 '참'이라고 전제하고 믿어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 즉 '불신(unbelieve)'은 그 후에 일어나는,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2차적인 작업입니다. 우리의 자동적이고 직관적인 뇌(시스템 1)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즉시 일단 '믿음' 모드로 돌입합니다. 그리고 힘들고 게으른 분석적 뇌(시스템 2)가 개입해야만 비로소 '의심'과 '불신'이라는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죠.

구체적인 실험: "딩카는 불꽃이다"를 믿게 만드는 법

길버트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으로 이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피험자들에게 "딩카는 불꽃이다"와 같이 의미 없는 문장을 보여주고, 몇 초 뒤에 '참' 또는 '거짓'이라는 정답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그룹에게는 숫자를 외우라는 추가 과제를 주어 의식적인 뇌(시스템 2)를 일부러 바쁘게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시스템 2가 방해받은 사람들은, 나중에 '거짓'이라고 들었던 문장들조차 '참'이라고 기억하는 경향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시스템 2가 과부하에 걸리자, 시스템 1의 초기 설정값인 '믿음' 상태를 '불신'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해버린 것입니다.

"시스템 2가 바쁘거나 게으를 때,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믿게 된다. 시스템 1은 잘 속고 믿으려는 편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피곤할 때, 혹은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광고나 가짜 뉴스에 더 쉽게 설득당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뇌는 의심할 힘이 없을 때, 믿는 것을 기본값으로 선택합니다.

확증 편향을 증폭시키는 현대의 기계: 필터 버블과 에코 체임버

스피노자와 길버트가 밝혀낸 뇌의 이러한 '믿음 편향'은, 현대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가집니다. 바로 '필터 버블'과 '에코 체임버' 때문입니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정보가 걸러지는 필터 버블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견을 강화하는 에코 체임버의 차이를 보여주는 개념도.
보이지 않는 벽이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정보가 걸러지는 필터 버블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견을 강화하는 에코 체임버의 차이를 보여주는 개념도.
필터 버블 vs 에코 체임버: 당신을 가두는 두 개의 감옥
구분 필터 버블 (Filter Bubble) 에코 체임버 (Echo Chamber)
원인 알고리즘 (유튜브, 페이스북 추천 시스템) 인간관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 그룹)
작동 방식 과거 당신의 클릭 기록을 바탕으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정보만 '자동으로' 걸러서 보여줌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고 강화하며, 반대 의견을 배척함
결과 세상에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됨 다른 의견이 틀렸거나 비도덕적이라고 확신하게 됨

문제는 이 두 개의 감옥이 우리의 '확증 편향'을 극도로 증폭시킨다는 점입니다(The Atlantic, 2016). 알고리즘과 친구들이 계속해서 내가 믿고 싶은 정보만 가져다주니, 나의 시스템 2는 점점 더 게을러집니다. 굳이 에너지를 써가며 의심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시스템 1의 '믿음' 모드는 계속해서 강화되고, 우리는 점점 더 자기 생각의 포로가 되어갑니다.

의심하는 노력, 생각하는 자유

그렇다면 이 거대한 믿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스피노자와 길버트의 이론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그러나 강력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의심하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의심 근력'을 키우는 3가지 방법

  1. 반대 의견 일부러 찾아보기: 내가 당연하게 믿고 있는 이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이나 언론의 글을 찾아 읽어보세요. 그들의 논리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나와 다른 생각의 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뇌에 계속 상기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감옥에 균열을 낼 수 있습니다.
  2. '왜'가 아닌 '어떻게' 질문하기: 어떤 주장을 접했을 때 "왜 저게 사실이지?"라고 묻는 것은 확증 편향을 강화할 뿐입니다. 대신, "저들은 '어떻게' 저런 결론에 도달했지? 어떤 근거를 사용했지?"라고 질문을 바꿔보세요. 과정에 집중하면 주장의 허점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정보 소비에 휴식 시간 갖기: 피곤하고 지쳤을 때는 중요한 정보를 판단하지 마세요. 당신의 시스템 2가 방전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정보도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뇌에 휴식을 주는 것이 현명합니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 믿음은 공기처럼 자연스럽지만, 의심은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과 같은 의식적인 노력이라고 말입니다. 가짜 뉴스와 알고리즘이 범람하는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숨을 참는 노력'을 해야만 생각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믿음은, 정말 당신의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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