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 기간, 집에서 가장 많이 쳐다본 곳은 어디였나요?
저의 경우는, 의미 없이 바라보던 차가운 회색 벽이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채 그 안에 갇혀 지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이 정말 나를 위한 공간이 맞는 걸까?’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를 멈추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공간을 깊이 들여다볼 시간을 주었습니다. 집은 더 이상 잠만 자는 곳이 아닌, 사무실이자 학교,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효율과 미니멀리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요.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밀레니얼 그레이의 종말, 따뜻함의 귀환
그렇게 ‘밀레니얼 그레이’의 시대는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도리 셸레프(Dori Shelef)는 말합니다. “외부 세계의 소음이 클수록, 우리는 집에서 더 차분하고 평온한 환경을 원하게 됩니다.”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불안 속에서, 우리는 차가운 회색 대신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본능적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감상만은 아닙니다. 세계적인 트렌드 예측 기관인 WGSN은 2025년 인테리어의 핵심 키워드로 ‘치유의 공간(Restorative Realms)’과 ‘자연과의 연결(Biophilic Connection)’을 꼽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집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안식처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의 컬러: 피치 퍼즈와 흙빛 톤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색상의 변화입니다. 팬톤(PANTONE)은 2024년 올해의 컬러로 ‘피치 퍼즈(Peach Fuzz)’를 선정했습니다. 이 부드럽고 따뜻한 복숭아 색은 “몸과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색”으로, 타인과의 연결과 공감을 상징합니다(PANTONE). 이는 차갑고 개인주의적인 느낌의 회색과는 정반대의 철학을 담고 있죠.
Vogue와 Architectural Digest 같은 주요 매체들 역시 2024년과 2025년의 트렌드로 테라코타, 올리브 그린, 깊은 브라운과 같은 따뜻한 흙빛 톤(Earthy Tones)의 귀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포스트 팬데믹 인테리어 트렌드
그렇다면 우리는 회색을 대신해 어떤 스타일로 공간을 채우고 있을까요?
- 자판디 (Japandi): 일본(Japanese)의 미니멀리즘과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n) 디자인의 따뜻함이 결합된 스타일입니다. 자연 소재(원목, 라탄, 리넨), 부드러운 중성색, 그리고 여백의 미를 강조하여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 레트로의 재해석 (Retro Revival): 미드센추리 모던이나 스페이스 에이지 스타일처럼, 과거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유기적인 곡선과 과감한 색상의 가구들이 다시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는 공간에 개성과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 개인화와 큐레이션 (Personalization & Curation): 핀터레스트와 같은 플랫폼의 발달로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습니다. 빈티지 가구, 여행지에서 사 온 소품, 직접 만든 예술 작품 등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로 공간을 채우며 ‘나다운 집’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집은 이제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밀레니얼 그레이의 종말은 단순히 하나의 유행이 끝났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가 집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거대한 전환점입니다. 효율과 기능, 자산 가치를 넘어, 나의 정신적 평온과 위로가 공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시대. 이제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색깔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