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을까?
자신의 장점 12가지를 떠올리려 애쓰다 결국 스스로를 '자신감 없는 사람'이라 결론 내렸던 지난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그 역설적인 현상을 통해, 우리 뇌가 기억의 '양'이 아닌, 그것을 '꺼내는 느낌'에 따라 스스로를 판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질문이 시작됩니다. 도대체 왜, 뇌는 '힘들다'는 느낌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론으로 곧장 연결해버리는 걸까요?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우리는 가용성 휴리스틱의 가장 깊은 엔진실로 들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설명되지 않은 비유창성(Unexplained Non-fluency)'이라는 아주 정교한 부품이 숨어있습니다.
단순한 '힘겨움'이 아닌, '예상 밖의' 힘겨움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세상을 예측하는 '기대 기계(Expectation Machine)'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떠올리는 작업 역시, 처음 몇 개는 쉽다가 점차 어려워질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기대'합니다.
하지만 자신감 있는 행동 12가지를 떠올리는 과제에서, 그 어려움의 정도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4~5개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뇌는 마치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기 시작하죠. 바로 이 순간, 뇌의 경고등이 켜집니다.
"어?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데? 이건 정상이 아니야."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힘겨움', 즉 '설명되지 않은 인지적 버벅거림'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입니다. 우리 뇌의 자동적인 운영체제인 시스템 1은 이 '놀람'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 하고, 가장 그럴듯한 설명, 즉 "내가 원래 자신감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라는 결론으로 성급하게 점프해버리는 것입니다(Schwarz et al., 1991).
실험실의 마법: '느낌'의 원인을 바꿔치기하다
만약 이 '설명되지 않은 힘겨움'이 진짜 원인이라면, 그 힘겨움에 다른 '설명'을 붙여주면 편향이 사라져야만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바로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기막힌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똑같이 자신감 있는 행동 12가지를 떠올리게 하면서, 한 그룹에게는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배경 음악이 흘러나올 겁니다. 이 음악은 당신의 기억 인출 능력을 저하 시킬 수 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이 힘들 것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배경 음악)'를 미리 제공받은 사람들은, 12가지 사례를 떠올리는 데 똑같이 힘겨워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스스로를 '자신감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6가지를 쉽게 떠올린 사람들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뇌는 더 이상 착각할 필요가 없었다
이 실험은 결정적인 사실을 증명합니다. 참가자들의 뇌는 자신의 힘겨움을 더 이상 '내 성격' 탓으로 돌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 이건 음악 때문이야"라는 명쾌한 외부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죠. '설명되지 않았던' 비유창성이 '설명된' 비유창성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기 평가를 위한 정보로 사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 효과는 배경 음악뿐만 아니라, 글씨체의 가독성이 떨어진다거나, 화면의 배경색이 집중을 방해한다는 등의 다른 '핑계'를 제공했을 때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내 생각의 주인이 되는 법
이 연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과 자기 비판이, 사실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그저 '설명되지 않은 뇌의 감각'에 대한 성급한 해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무언가 힘들게 느껴지고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질 때, 무작정 그 느낌을 믿지 마세요. 대신, 시스템 2를 깨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겁니다. "지금 내가 힘든 이유는 정말 내 능력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 잠을 설쳤거나,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해서는 아닐까?"
내 느낌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내 뇌가 만든 착각의 감옥에서 벗어나, 내 생각의 진짜 주인이 되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