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혹시 정말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오늘 출애굽기 8장 16-19절의 '이(lice) 재앙'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깊은 의미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어요. 이전 피 재앙이나 개구리 재앙처럼 거창하고 눈에 띄는 현상이 아니었거든요. 그저 땅의 티끌이 변해 온몸을 괴롭히는 작은 벌레가 되었다니… 언뜻 생각하면 '겨우 이?' 싶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바로 이 작은 존재들이 바로의 고집을 꺾기는커녕, 오히려 이집트의 강력했던 요술사들마저 "하나님의 권능"임을 고백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 짧은 구절 속에 담긴 깊은 의미와, 우리의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저의 생각과 함께 나눠볼게요. 😊
세 번째 재앙의 시작: 티끌이 '이'가 되다 (출애굽기 8장 16-17절) ✨
개구리 재앙이 끝난 후,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완강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아론에게 명령하여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출애굽기 8:16). 여기에서도 명령의 계통이 명확하게 드러나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다시 아론에게 지시를 내리죠. 그리고 아론이 지팡이를 들어 땅을 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해요. "그리하면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출애굽기 8:16). 그리고 아론이 그대로 행하자, "사람과 가축에게 이가 생기고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애굽 온 땅에 이가 있으니라" (출애굽기 8:17).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요? 밟고 다니는 땅의 티끌, 즉 먼지들이 순식간에 살아있는 작은 벌레, '이(lice)'로 변한 겁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존재들이지만, 그 수가 너무 많고 온몸을 끈질기게 괴롭혔을 거예요. 우리가 매일매일 숨 쉬고 살아가는 공간, 그 땅 자체가 재앙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이 정말 충격적입니다. 이는 이집트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땅의 신들을 무력화시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요.
피 재앙이 나일강을, 개구리 재앙이 강과 땅을 뒤덮었다면, 이 재앙은 ‘티끌’이라는 가장 미세한 존재까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거대하고 눈에 띄는 현상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영역까지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거죠. 저는 이 부분이 참 인상 깊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큰 문제에만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거든요.
성경에서 '이'로 번역된 히브리어 '킨님(כִּנִּים)'은 작은 벌레나 모기, 각다귀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벌레였는지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벌레들이 사람과 가축 모두에게 극심한 가려움과 고통을 주어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피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고통이었죠.
이집트 요술사들의 좌절: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출애굽기 8장 18-19절) 🚫
이전 재앙들에서는 바로의 요술사들이 모세와 아론이 행한 이적을 흉내 내며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는 데 일조했었죠. 피 재앙 때는 그들 역시 물을 피로 변하게 했고, 개구리 재앙 때는 개구리를 더 많이 나오게 했으니까요. 저는 이때 요술사들이 속으로 '흥, 우리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 이 재앙에서는 달랐습니다.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이같이 행하려 하였으나 하지 못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있었으므로" (출애굽기 8:18). 요술사들은 땅의 티끌을 이로 변하게 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마법을 부려도 티끌은 그저 티끌일 뿐, 생명이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없었던 거죠. 이 장면에서 저는 그들의 좌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지?' 하는 혼란과 무력감 말이에요.
결국 요술사들은 바로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출애굽기 8:19). 이 짧은 문장 속에는 그들의 모든 자존심과 자만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건, 이 재앙이 단순한 마술이 아니라 신적인 개입임을 깨달았다는 뜻이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바로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거예요.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보좌하며 신적인 능력을 흉내 내던 자들마저 무릎을 꿇었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오해가 있을 수 있어요. 요술사들이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이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한 전능자로 인정했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당시 이집트 다신교 사회에서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했으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돕는 '어떤 신적 존재의 능력'으로만 여겼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에서 '권능'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힘을 목격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간혹 이 구절을 두고 요술사들이 완전히 회개하고 여호와를 믿었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고백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지,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신앙 고백은 아니었습니다. 바로가 계속해서 완악했듯이, 요술사들 역시 완전한 변화에 이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이런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해요.
바로의 완악함, 그 끝없는 고집 (출애굽기 8장 19절) 💔
가장 충격적인 것은, 요술사들마저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라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8:19).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출애굽기 8:19). 이전 두 재앙에서처럼, 바로는 고통이 사라지면 다시 마음을 굳게 먹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의 가장 신뢰하는 마술사들마저 이적을 행할 수 없다고 인정했는데도 말이죠.
여기서 다시 한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표현은 바로의 완악함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제로 조종하여 완악하게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바로의 완고한 성품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그 완악함을 통해 자신의 크신 권능을 이집트와 전 세계에 드러내시려는 의도가 있었던 거죠. 마치 우리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계속될 때, 그 어려움 자체가 우리를 더 큰 교훈으로 이끌고, 우리가 의지할 분이 누구신지 깨닫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재앙은 바로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 고집과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의 신하들의 분명한 고백조차 외면했어요. 이는 권력과 자존심이 진실을 가로막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예시입니다. 때로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진심 어린 조언마저도 자신의 고집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이 재앙'이 주는 놀라운 메시지 🐛✨
출애굽기 8장 16-19절의 짧지만 강력한 '이 재앙'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 하나님의 완벽한 통제력: 이 재앙은 가장 작고 미미한 존재인 티끌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거대한 강을 피로 바꾸고, 온 땅을 개구리로 뒤덮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물까지 창조하고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냅니다. 우리 삶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은 아시고 간섭하실 수 있다는 위로와 동시에, 겸손히 그분께 순종해야 할 이유를 알려줍니다.
- 인간 능력의 한계: 이집트 요술사들은 자신들이 흉내 낼 수 없었던 이 재앙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권능'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인간의 지혜나 능력도 창조주의 영역 앞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혹시 그 해결책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바로의 완악함: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도왔던 요술사들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끝까지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이는 바로의 완악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며, 고집과 교만이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분명한 증거 앞에서도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고집을 부릴 때가 있진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재앙, 핵심 요약!
자주 묻는 질문 ❓
출애굽기 8장 16-19절의 '이 재앙' 이야기는 저에게 '아, 정말 작은 것도 무시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해줬어요. 우리가 때때로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서 신경 쓰지 않는 부분에서 오히려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특히, 아무리 대단한 인간의 능력이라도 창조주의 영역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는 바로의 완악함처럼, 혹은 이집트 요술사들의 한계처럼, 해결되지 않는 작은 '티끌' 같은 문제가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발견하고,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의 생각과 경험을 댓글로 나눠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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