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라서요"
20대 시절, 저는 이 말을 방패처럼 휘두르며 살았습니다. 새로운 모임에 나가는 대신 "원래 낯을 가려서"라며 집에 머물렀고, 발표 기회가 주어지면 "원래 남들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서"라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내성적인 나'라는 정체성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저를 지켜주는 안전한 동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굴은 안락한 만큼, 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켰습니다. 동굴 밖에서는 수많은 기회와 관계들이 저를 스쳐 지나갔고,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꼬리표 뒤에 숨어 그 모든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저처럼 살아갑니다. "저는 숫자에 약해요", "저는 창의력이 부족해요", "저는 의지가 박약해요" 와 같은 고정된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안전하게 머무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칼 융부터 스탠퍼드의 캐럴 드웩 교수까지, 위대한 지성들은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당신은 완성된 '조각상'이 아니라, 이제 막 조각되기 시작한 '대리석 원석'과 같습니다. 당신은 '고정된 존재(Being)'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끊임없이 '되어가는 과정(Becoming)' 그 자체입니다.
'성장 마인드셋' vs '고정 마인드셋': 당신의 믿음이 현실이 된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재능이나 환경이 아닌, '마인드셋(Mindset)', 즉 마음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믿음 체계를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 고정 마인드셋 (Fixed Mindset): 나의 지능, 성격, 재능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들은 도전을 실패의 위험으로 간주하여 피하고, 비판을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의 성공을 위협으로 느낍니다. 제가 "나는 원래 내성적이야"라고 믿었던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 성장 마인드셋 (Growth Mindset): 나의 능력은 노력과 학습, 끈기를 통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들은 도전을 성장의 기회로 여기고, 비판을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의 성공에서 영감을 얻습니다(Dweck, 2006).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마인드셋이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변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도전을 피하게 되고, 결국 그 믿음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반면, "나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기꺼이 도전에 맞서고, 결국 그 믿음대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이 됩니다.

'진짜 나'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칼 융의 '개성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장 마인드셋'을 가지고 끊임없이 '되어가는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심리학자 중 한 명인 칼 융은 그 여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개성화란, 사회적 요구에 맞춰 쓰는 가면인 '페르소나(Persona)'와, 내 안에 숨겨진 어두운 면인 '그림자(Shadow)'를 포함한 의식과 무의식의 모든 조각들을 통합하여, 온전하고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자기(Self)가 되어가는 평생의 과정을 의미합니다(Jung, C.G.). 즉, '진짜 나'는 내면 어딘가에 숨겨져 있어 '발견'해야 하는 보물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나의 모든 가능성을 용기 있게 탐험하고 통합하며 평생에 걸쳐 '창조'해나가는 예술 작품과 같습니다.
당신 안의 다양한 '페르소나'를 실험하세요
우리는 누구나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유능한 나', 친구들 앞에서의 '유머러스한 나', 가족 앞에서의 '책임감 있는 나'처럼 말이죠. 문제는 우리가 이 중 하나만을 '진짜 나'라고 착각하고, 나머지를 억누를 때 발생합니다.
성장은, 내가 평소에 쓰지 않던 새로운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실험'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의 허미니아 이바라 교수는, 정체성은 성찰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직접 '실행'해봄으로써 우리가 누구로 되어갈지를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Ibarra, 2003). "나는 원래 내성적이야"라고 생각했던 제가, 억지로 스피치 동아리에 가입해 '발표하는 나'라는 페르소나를 실험해보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제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주의하세요! 이것은 '가짜 나'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실험하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바꾸는 '가식적인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존재하지만 아직 발현되지 않았던 '가능한 자아들(Possible Selves)'에게 무대에 오를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Markus & Nurius, 1986). 이 실험들을 통해 어떤 페르소나가 나의 핵심 가치와 가장 잘 맞는지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통합하여 더 풍성하고 진실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당신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다음 챕터는 당신이 씁니다
제 동굴의 문을 열고 나온 지금, 저는 더 이상 저를 '내성적인 사람'이라고만 소개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내성적이지만, 때로는 누구보다 외향적이고, 때로는 분석적이지만, 때로는 매우 감성적인, 그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된 특성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기대를 엮어 끊임없이 써 내려가는 한 편의 '이야기'와 같습니다(McAdams, 2008). 당신이 지금까지 써온 챕터가 당신의 전부는 아닙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문장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성급하게 끝맺지 마세요. 당신의 손에는, 다음 챕터를 완전히 새롭게 써 내려갈 펜이 쥐어져 있습니다.
오늘, 당신을 가두고 있는 그 낡은 꼬리표는 무엇인가요? 그 꼬리표를 잠시 떼어내고, 한 번도 되어보지 못했던 '가능한 나'를 위한 아주 작은 실험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위대한 이야기, 그 다음 챕터의 첫 문장이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혼란스럽고, 어떤 게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요.
-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오히려 성장을 위한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칼 융의 '개성화' 과정은 본질적으로 혼란을 동반합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모든 혼란스러운 감정과 모순된 모습들이 모두 '당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세요. 정답을 찾기보다, 다양한 나의 모습을 탐험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 새로운 페르소나를 실험하는 것이 두려워요. 실패하면 어떡하죠?
- '성장 마인드셋'을 적용할 완벽한 기회입니다. 실패는 당신의 정체성에 대한 '판결'이 아니라, 당신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발표를 망쳤으니 나는 발표에 소질이 없어" (고정 마인드셋) 가 아니라, "이번 발표를 통해 내가 어떤 부분에서 긴장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다음엔 이 부분을 보완해보자" (성장 마인드셋) 라고 생각의 틀을 바꾸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 나이가 들어서도 변할 수 있을까요?
- 물론입니다. 우리의 뇌는 평생에 걸쳐 변화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능력, 즉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이 나이에 뭘…' 이라는 생각이야말로 당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고정 마인드셋'입니다. 언제든,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