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하지 않는 내가 '비정상'인 걸까?
직장 상사의 부당한 질책, 약속을 어긴 친구에 대한 서운함, 예기치 못한 사고로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화가 나면 참지 못했고, 불안하면 어쩔 줄 몰랐으며,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온종일 기분이 좌우되곤 했죠. 그런 제게 스토아 철학은 늘 하나의 '판타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감정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지? 그건 로봇이나 가능한 거 아닐까?'
저는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평정심'을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제거한, 차갑고 비인간적인 '무감각' 상태로 오해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제가 스토아 철학의 원전을 깊이 파고들수록, 그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정교하고 인간적인지에 대해 전율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감정의 '제거'가 아니라, 감정의 '이해'와 '승화'였습니다.
오늘은 스토아 철학의 궁극적인 경지, 외부 사건에 의해 내면의 평화가 방해받지 않는 '평온의 상태'가 무엇인지, 그리고 분노, 질투, 탐욕과 같은 '병적인 감정'들을 다스려 이 경지에 이르는 구체적인 수련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파테이아'는 무관심(Apathy)이 아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추구한 이상적인 상태를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 '무관심' 혹은 '냉담'을 의미하는 'Apathy'의 어원이 되었지만, 그 본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스토아 철학에서 '아파테이아'는 모든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이성을 마비시키는 파괴적이고 '병적인 감정(Pathos)'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스토아 철학자들은 감정을 두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 파토스(Pathos):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비이성적이고 해로운 감정들. 예를 들어, '승진에서 탈락한 것은 내 인생이 끝났다는 의미다'라는 잘못된 판단이 '절망'이라는 파토스를 낳습니다. 분노, 극심한 슬픔, 탐욕, 공포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에우파테이아이(Eupatheiai): 올바른 이성적 판단에 따른 건강하고 '좋은 감정'들. 예를 들어, 친구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기쁨), 위험을 현명하게 피하려는 마음(조심성), 덕을 향한 건전한 열망(의지) 등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권장하는 긍정적인 감정입니다.
따라서 스토아의 현자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감정의 소음에서 벗어나, 맑고 깊은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 상태에서 세상을 명료하게 바라보고, 건강한 기쁨과 의지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평정심의 첫걸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아파테이아'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요? 스토아 철학의 가장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인 에픽테토스는 그 시작이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 에픽테토스
교통체증 때문에 약속에 늦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차가 막힌다'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망했다. 나는 신용 없는 사람이 될 거야.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입니다. 바로 이 '판단'이 우리를 불안과 분노의 나락으로 떨어뜨립니다(Epictetus, c. 135).
평정심 훈련의 첫걸음은, 이처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나의 생각, 판단, 행동)과 통제할 수 없는 것(외부 사건, 타인의 말과 행동, 나의 명성)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오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쏟아붓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평정심을 단련하는 3가지 스토아적 훈련
스토아 철학은 책상 위 이론이 아닌, 삶 속에서 실천하는 '정신의 무술'입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까지, 그들이 매일 단련했던 구체적인 훈련법을 소개합니다.
훈련법 | 핵심 원리 | 구체적인 실천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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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시각화 (Negative Visualization) |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건강, 가족, 재산)이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상상해봄으로써, 현재 내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고 상실의 충격에 대비한다. | 아침에 일어나 1분간 눈을 감고, "오늘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는 못 본다면?", "지금 내가 가진 건강을 잃는다면?"이라고 상상해본다. 이를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
악의 예행연습 (Premeditatio Malorum) | 오늘 하루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미리 상상하고, 그에 어떻게 이성적으로 대처할지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본다. | 중요한 발표 전, "청중이 지루해하면 어떡하지? 갑자기 장비가 고장 나면?" 등을 미리 떠올리고, "그럴 땐 침착하게 유머로 넘어가자", "예비 파일을 준비해가자" 와 같이 구체적인 대응책을 세워본다. |
저녁의 자기 성찰 (Evening Reflection) |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돌아본다. "오늘 어떤 잘못된 판단을 했는가?", "어떤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었는가?", "내일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는가?" | 잠들기 전 일기장에 오늘 하루의 일과를 복기하며, 세네카가 제시한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는 오늘 어떤 나쁜 습관을 고쳤는가? 어떤 유혹과 맞서 싸웠는가? 어떤 점에서 더 나아졌는가?" |
평정심은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토아 철학은 매일 아령을 들어 근육을 키우듯, 꾸준한 훈련을 통해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오늘 당장 평정심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생각과 판단으로 돌아오려는 '노력' 그 자체입니다. 로마의 위대한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조차 그의 '명상록'에서 매일같이 자신의 나약한 감정과 씨름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저는 이제 압니다. 진정한 강함은 분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노라는 감정이 나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임을. 진정한 평온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함이 아니라, 폭풍우 치는 세상 속에서도 내 안의 등대를 굳건히 지키는 것임을 말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에게 초인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이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여,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의 덕을 쌓으며 살아가라고 말할 뿐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그 파도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