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걱정이 사소해지는 순간, 칸트가 말한 '숭고함'의 재발견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경험할 때, 당신의 세상은 오히려 더 커집니다. 칸트 철학의 '숭고함'부터 현대 심리학의 '경외감'까지. 사소한 걱정과 이기심을 초월하고, 더 큰 존재와 연결되는 이 특별한 경험의 비밀을 알려드립니다.

어젯밤 부부싸움은, 우주 앞에서 얼마나 하찮은가

몇 년 전, 아내와 정말 사소한 문제로 크게 다툰 다음 날이었습니다. 냉랭한 침묵 속에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저는 천문대로 향하는 차에 올랐습니다. 며칠 전부터 예약해둔 별자리 관측 프로그램 때문이었죠. 솔직히 말해, 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어젯밤의 다툼과 제 속상한 마음이 온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렇게 억지로 산에 올라, 천체망원경에 눈을 갖다 댄 순간, 저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제 눈앞에는 수만 개의 다이아몬드처럼 쏟아지는 별들의 강,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백만, 수천만 년 전의 빛이 지금 내 망막에 닿고 있다는 사실. 저 광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그리고 나는 한 점의 먼지보다도 작다는 압도적인 진실 앞에서,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젯밤의 분노와 억울함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을까."

그것은 패배감이나 허무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해방감과 평온함이었죠. 나의 작은 세상에 갇혀 있던 나를 꺼내어, 더 거대한 질서의 일부로 만들어주는 경이로운 경험. 철학자들은 이 특별한 감정을 **'숭고함(The Sublime)'**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숭고함'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일상의 사소한 걱정과 이기적인 마음을 초월하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입니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잘 가꿔진 정원의 예쁜 꽃, 조화로운 음악, 잘생긴 얼굴. 이런 '아름다움(The Beautiful)'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기쁨을 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한눈에 파악하고, 이해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숭고함'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입니다.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숭고함은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해 능력을 압도하는 대상을 마주했을 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감정입니다(Kant, 1790).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거대한 산맥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그 거대함 앞에서 무력하게 실패하고 말죠.

아름다움(조화로운 꽃)과 숭고함(광활한 산맥)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비교하는 인포그래픽.
안전한 기쁨과 경이로운 공포. 아름다움과 숭고함은 우리를 각기 다른 차원으로 이끕니다. 아름다움(조화로운 꽃)과 숭고함(광활한 산맥)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비교하는 인포그래픽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뒤섞인 '즐거운 공포'

칸트보다 앞서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함을 '즐거운 공포(delightful horror)'라고 표현했습니다(Burke, 1757). 거대한 폭포 앞에서 "저 물에 휩쓸리면 어떡하지?"라는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는 동시에, 그 압도적인 힘과 장엄함에 경탄하는 이중적인 감정. 이처럼 숭고함은 우리를 안전지대 밖으로 끌어내어, 나의 유한함과 나약함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경이로운 정신적 도약이 일어납니다.

'작아지는 나'를 경험할 때, 진짜 '나'는 더 커진다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내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을까요?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 경험을 **'경외감(Awe)'**이라는 감정으로 설명하며, 이것이 우리 정신에 미치는 놀라운 효과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1. '작은 자아 (Small Self)' 효과: 걱정의 소멸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 우리의 관심은 온통 나 자신에게 쏠려 있던 시선에서 벗어나 외부의 광대한 대상으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아'의 경계가 흐려지고, "나의 문제, 나의 걱정, 나의 욕망"이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깨닫게 되죠. UC 어바인의 폴 피프 교수는 경외감이 이렇게 '작은 자아'를 유도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줄이고 더 친사회적이고 이타적인 행동을 촉진한다고 말합니다(Piff, Keltner, et al., 2012). 은하수 앞에서 저의 부부싸움이 하찮게 느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2. '정신적 재정비 (Mental Accommodation)': 관점의 확장

경외감은 우리의 기존 이해 체계를 뛰어넘는 광대한 경험입니다(Greater Good Science Center).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뇌는 이 새로운 정보를 담기 위해 기존의 낡은 생각의 틀을 깨고 확장해야만 합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본 우주비행사들이 국경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지구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되는 '오버뷰 효과(Overview Effect)'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Yaden et al., 2016). 숭고함의 경험은 우리를 더 넓은 관점을 가진, 더 지혜로운 존재로 만듭니다.

주의하세요!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숭고함의 경험을 통해 일상의 문제가 사소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거대한 관점을 얻고 돌아온 우리는, 더 이상 그 문제에 감정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더 차분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바라볼 힘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무기'를 얻는 과정입니다.

일상 속에서 '숭고함'을 만나는 법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는 것만이 숭고함을 경험하는 유일한 길은 아닙니다. 숭고함의 본질은 '나를 초월하는 광대함'에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 앞에서, 복잡한 교향곡을 들으며, 심오한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며, 혹은 다른 사람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마주하며 우리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밤하늘을 보며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3-4) 라고 고백했던 순간이야말로, 숭고함이 신앙과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지점일 것입니다.

천문대에서 내려온 날, 저는 아내에게 달려가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우주의 광대함 앞에서, 저의 옹졸한 자존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경험하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껍데기들을 벗어던지고, 더 크고 본질적인 나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연결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당신의 걱정이 세상을 모두 덮어버릴 것 같을 때, 잠시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그 거대한 푸르름이,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답을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꼭 웅장한 자연이 아니어도 경외감을 느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UC 버클리의 대커 켈트너 교수는 경외감이 '8가지 경이(8 Wonders of Life)'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도덕적 아름다움(타인의 선행), 집단적 열광(콘서트, 스포츠 경기), 자연, 음악, 시각 예술, 영적 및 종교적 경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그리고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아이디어 등이 모두 경외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 정신 건강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나요?
연구에 따르면, 경외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수치가 낮고, 삶의 만족도가 높으며, 더 겸손하고 관대한 경향을 보입니다. 또한 경외감은 염증 수치를 낮추는 등 신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경외감이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여, 걱정과 불안의 원인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경외감을 더 자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경외감 산책(Awe Walk)'을 추천합니다. 평소에 걷던 길을, 오늘은 마치 처음 온 곳인 것처럼 의식적으로 '경이로운 것'을 찾아보며 걸어보는 것입니다. 하늘의 구름 모양, 나뭇잎의 복잡한 잎맥, 건물의 정교한 디테일 등,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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