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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지퍼가 열린 동료에게,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발표를 막 끝낸 후배가 있었습니다. 내용은 훌륭했지만, 발표 내내 바지 지퍼가 열려 있었죠. 그 모습을 본 당신 앞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 (침묵) "어차피 끝났는데 뭐. 괜히 말했다가 민망해할 거야. 좋은 게 좋은 거지."
- (뒷담화) 다른 동료에게 "쟤 지퍼 열린 거 봤어? 대박이다." 라고 말한다.
- (공개적 지적)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어이 김대리, 바지 지퍼 열렸어!" 라고 외친다.
- (조용한 도움) 조용히 후배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발표 정말 좋았어요. 근데 혹시 모르니 바지 지퍼 한번 확인해봐요." 라고 말해준다.
아마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은 1번을 택할 겁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배려'의 마음에서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당신의 침묵으로 인해, 그 후배는 하루 종일 열린 지퍼를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당신의 '배려'는 결국 그 후배를 더 큰 민망함에 빠뜨리는, 가장 잔인한 무관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솔직함'과 '무례함'을, '배려'와 '침묵'을 동일시하도록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구글과 애플의 최고 리더들을 코칭한 킴 스코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개인의 성장을 막고, 팀을 병들게 하는 최악의 소통 방식이라고 말이죠. 그녀는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아니, 오히려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면서 성과를 이끌어내는, 혁신적인 소통의 기술을 제안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영혼을 지키면서 가장 똑똑하게 피드백하는 기술, '래디컬 캔더(Radical Candor)', 즉 '완전한 솔직함'입니다.
"조용한 칭찬이 더 나쁘다": 래디컬 캔더의 4사분면
래디컬 캔더는 단순히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가지 축이 만나는, 매우 섬세하고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바로 '개인적인 배려(Care Personally)'와 '직접적인 대립(Challenge Directly)'이라는 두 축이죠(Scott, 2017).
이 두 축을 기준으로, 우리의 피드백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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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적 공감 (Ruinous Empathy): (배려 ↑, 대립 ↓)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쓴소리를 아끼는 '착한 사람'의 영역이죠. 앞서 말한 '지퍼가 열렸다고 말해주지 않는 침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방의 성장을 막고, 문제가 곪아 터지게 만드는 가장 위험한 위선입니다.
- 불쾌한 공격 (Obnoxious Aggression): (배려 ↓, 대립 ↑)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없이, 오직 사실만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건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상사처럼, 맞는 말을 하더라도 상대에게 깊은 상처와 반감만 남기는 '재수 없는 똑똑이'의 영역입니다.
- 교활한 불성실 (Manipulative Insincerity): (배려 ↓, 대립 ↓) 최악의 영역입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립도 없이, 오직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거짓 칭찬을 하거나 뒤에서 험담하는 것입니다.
- 완전한 솔직함 (Radical Candor): (배려 ↑, 대립 ↑) 우리가 지향해야 할 유일한 영역입니다.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당신이 더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진심을 담아,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피드백하는 것입니다. 바지 지퍼를 조용히 알려주는 동료처럼 말이죠.
결국, '신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래디컬 캔더가 '불쾌한 공격'과 구별되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신뢰'입니다. 상대방이 "저 사람이 나를 아끼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주는구나"라고 믿을 때, 비로소 쓴소리는 '상처'가 아닌 '성장을 위한 선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뢰는, 비판을 하기 전에 먼저 비판을 구하고, 칭찬을 공개적으로 하며,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쌓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보장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속에서만, 완전한 솔직함은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Edmondson, 1999).
상처 주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구체적인 스크립트
그렇다면 이 '완전한 솔직함'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다음은 당신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화 스크립트입니다.
사례: 회의 때마다 말을 빙빙 돌리는 팀원에게
- (파괴적 공감): (회의가 끝난 후) "오늘도 수고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불쾌한 공격): "제발 요점만 말해요. 시간 낭비잖아요."
- (완전한 솔직함): "OO님,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상황) 오늘 회의에서 A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실 때, 배경 설명이 길어져서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조금 어려웠어요. (행동) 다른 분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던 것 같아요. (영향) 그래서 OO님이 준비하신 좋은 의견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할까 봐 제가 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안) 다음에는 두괄식으로 결론부터 말씀해주시면, OO님의 논리가 훨씬 더 강력하게 전달될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부분이 있을까요?"
주의하세요! '사람'이 아닌 '상황'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래디컬 캔더의 핵심은 상대방의 인격이나 성격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횡설수설해요?"가 아니라, "오늘 회의에서 당신의 설명 방식이..."처럼, **관찰 가능한 구체적인 '상황'과 '행동', 그리고 그로 인한 '영향'**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닌, 문제에 대한 협력적인 해결을 제안하는 것이죠.
가장 어려운 첫걸음: 비판을 '요청'하는 용기
래디컬 캔더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 대한 비판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오늘 제 발표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라고 먼저 물어보세요. 당신이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도 당신에게 마음 편히 솔직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더 이상 '착한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침묵하지 마세요. 침묵은 단기적인 평화를 가져다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당신과 모두의 성장을 좀먹는 독이 될 뿐입니다. 진심 어린 배려를 담아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영혼과 관계를 모두 지키는 가장 위대한 소통의 기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 상사가 제게 '불쾌한 공격'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래디컬 캔더의 원칙을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맞서기보다, 상대의 피드백을 성장을 위한 '선물'로 간주하고 그 의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장님, 제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더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실 수 있을까요?"와 같이, 상대의 공격성을 '건설적인 조언'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 칭찬에도 래디컬 캔더가 적용될 수 있나요?
- 물론입니다. "잘했어요"와 같은 모호한 칭찬은 '교활한 불성실'에 빠지기 쉽습니다. 완전하게 솔직한 칭찬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이번 보고서의 시장 분석 파트는 정말 인상 깊었어요. 특히 A 데이터를 B 데이터와 연결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도출한 부분에서 많이 배웠습니다."처럼, 무엇을, 왜, 어떻게 잘했는지를 명확하게 짚어주는 것이 상대방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 성격이 내향적이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 래디컬 캔더는 외향적인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핵심은 목소리의 크기나 태도의 강인함이 아니라, '진심 어린 배려'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도 얼마든지 완전하게 솔직한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 특유의 신중함과 깊은 관찰력이, 더 사려 깊고 통찰력 있는 피드백을 전달하는 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