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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 욕망, 정말 ‘당신의 것’이 맞습니까?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별생각 없던 물건이 친구의 ‘인생템’이라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특별해 보이고, 전혀 관심 없던 여행지가 SNS 인플루언서의 사진 한 장에 당장 떠나야 할 것 같은 선망의 장소로 바뀌는 경험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취향과 주체적인 판단으로 무언가를 원한다고 믿지만, 정말 그럴까요?
저는 오랫동안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의 법칙을 탐구해 온 사회 물리학자입니다. 그리고 제가 발견한 가장 근원적인 힘 중 하나는 바로 ‘욕망’입니다. 하지만 이 욕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개인의 내면에서 싹트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이 불편한 진실을 ‘모방 욕망(Mimetic Desire)’이라는 개념으로 명쾌하게 밝혔습니다.
오늘 저는 당신의 지갑을 열게 하고, 당신의 마음을 흔들며, 때로는 당신을 지독한 경쟁으로 내모는 이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를 함께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바라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모든 욕망은 삼각형이다: 주체, 모델, 그리고 대상
우리는 흔히 욕망을 ‘나’와 ‘대상’ 사이의 직선적인 관계로 생각합니다. 내가(주체) 저 명품백을(대상) 원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지라르는 여기에 숨겨진 제3의 존재, 바로 ‘모델(Model)’ 또는 ‘매개자(Mediator)’가 있다고 말합니다. 즉, 나의 욕망은 대상을 직접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욕망하는 모델을 모방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결국 욕망의 구조는 ‘나-대상’의 직선이 아닌, ‘나-모델-대상’의 삼각형 구조를 이룹니다(한국심리학회지, 2021). 내가 저 명품백을 원하는 진짜 이유는, 그 가방 자체가 가진 고유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선망하는 인플루언서, 동료, 혹은 사회적 ‘승자’로 보이는 그 ‘모델’이 그 가방을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모델처럼 되고 싶기에, 그들의 욕망을 그대로 복사해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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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서 경쟁자로: 가까울수록 위험한 ‘내적 매개’
지라르는 이 욕망의 모델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바로 ‘외적 매개’와 ‘내적 매개’입니다.
- 외적 매개 (External Mediation): 모델이 나와 다른 세계에 속해 있어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역사 속 영웅이나 전설적인 인물을 동경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돈키호테가 전설 속 기사 아마디스를 모방하는 것처럼, 이 관계는 비교적 평화롭습니다.
- 내적 매개 (Internal Mediation): 진짜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모델이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해있을 때, 즉 나의 친구, 동료, 이웃이 모델이 될 때입니다. 처음에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델은, 내가 그와 비슷한 욕망을 품게 되는 순간, 같은 대상을 놓고 싸워야 할 ‘경쟁자’이자 나의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돌변합니다(St Andrews Encyclopaedia of Theology).
바로 이 지점에서 선망은 시기와 질투로, 동경은 맹렬한 경쟁으로 변질됩니다. SNS에서 친구의 행복한 모습에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직장 동료의 승진 소식에 축하를 건네면서도 조바심이 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부추기는 모델이자, 동시에 서로의 길을 막는 경쟁자가 되어 끝없는 ‘모방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갈등의 뿌리: 희생양 메커니즘
이러한 모방적 경쟁이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라르는 사회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혼란의 위기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원하며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사회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무의식적인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바로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입니다(ResearchGate, 2017). 공동체는 모든 갈등과 불행의 원인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뒤집어씌웁니다. 그리고 그 ‘희생양’을 다 함께 비난하고, 추방하고, 심지어 제거함으로써 폭력적인 에너지를 한곳에 쏟아붓고 기적 같은 평화와 질서를 되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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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희생양이 정말로 죄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단지 ‘만장일치로 비난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을 뿐입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혹은 외부인이 희생양이 되기 쉬운 이유입니다. 이 끔찍한 과정을 통해 사회는 일시적인 안정을 얻고, 희생양의 죄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신화와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지라르는 인류의 수많은 신화, 종교 의례, 사회 제도가 바로 이 희생양 메커니즘의 흔적이라고 분석합니다.
모방의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적 가이드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모방의 중력’ 앞에서 속수무책일까요? 지라르의 이론이 주는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이 무의식적인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거기서 의식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는 데 있습니다.
- 내 욕망의 ‘모델’을 찾아내고 질문하기
지금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이 욕망은 어디에서 왔을까? 누가 나의 ‘모델’인가?” 그 모델이 특정 인물이든, 사회적 통념이든, 광고 속 이미지든,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욕망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 명품백을 원하는 것이, 정말 나의 미적 취향 때문인지, 아니면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모델 때문인지 구분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 경쟁의 무대에서 내려오기
내적 매개, 즉 친구나 동료와의 경쟁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경쟁이 ‘대상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경쟁 그 자체’를 위한 것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것을 똑같이 손에 넣는다고 해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경쟁의 무대 자체에서 내려와, 나만이 걸을 수 있는 다른 길을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 긍정적 모델 모방하기 (Imitatio Christi)
지라르는 모든 모방이 파괴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경쟁과 폭력을 낳지 않는 초월적인 모델, 즉 ‘그리스도의 모방(Imitatio Christi)’과 같은 긍정적 모방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St Andrews Encyclopaedia of Theology). 이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부와 명예 같은 경쟁적 가치가 아닌, 사랑, 연민, 지혜와 같은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델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분명 그런 긍정적인 모델들이 존재합니다.
"당신의 욕망이 끝나는 곳에서, 당신의 진짜 삶이 시작된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이론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믿어왔던 ‘주체적인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타인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진실을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불편함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향한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지가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모방의 유혹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기를 ‘멈추고’,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가 진정한 우리를 증명합니다. 타인의 욕망을 좇는 거대한 행렬에서 벗어나, 당신의 내면이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은 인간의 욕망이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모델)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형성된다는 핵심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로 인해 욕망은 주체-모델-대상의 '삼각형 구조'를 가지며, 모델과의 근접성에 따라 경쟁과 갈등, 심지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 욕망의 '내적 매개'와 '외적 매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 '외적 매개'는 모델이 주체와 다른 세계에 속해(예: 역사적 영웅)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반면, '내적 매개'는 모델이 주체와 같은 세계에 속해(예: 친구, 동료) 같은 대상을 두고 경쟁하게 되면서, 선망의 대상이 동시에 경쟁자이자 장애물이 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 희생양 메커니즘은 현대 사회에서도 나타나나요?
- 네, 그렇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난, 온라인상의 악플 문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은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불안과 갈등을 특정 대상에게 전가하여 내부 결속을 다지는 현상입니다.
- 모방 욕망 이론에 대한 비판은 없나요?
- 주요 비판으로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모방'이라는 단일한 틀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지나치게 야심 차다는 점, 그리고 이론의 근거가 주로 문학 작품 분석에 기반하여 경험적, 과학적 검증이 부족하다는 점 등이 제기됩니다(ResearchGate, 2024).
- 이 이론을 이해하는 것이 제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 자신의 욕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근원을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한 경쟁과 시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SNS나 광고가 어떻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꿰뚫어 보고, 더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