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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의’를 원합니까, ‘평화’를 원합니까?
층간 소음으로 몇 년을 괴롭히던 이웃에게 마침내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나를 고통받게 했던 상사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법은 당신의 편이었고, 당신은 분명히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의 마음은 여전히 지옥일까요? 왜 승리의 기쁨은 잠시뿐, 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와 허무함이 꿈틀거릴까요?
저는 모든 분쟁의 끝이 ‘승패’가 아님을 아는, 화해의 중재자입니다. 저는 법의 처벌만으로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분쟁이 생기면 ‘정의’를 외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쩌면 가해자의 처벌이 아니라, 파괴된 내 삶의 ‘평화’를 되찾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끔찍한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을 피의 복수 없이 청산했던 위대한 지혜,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모델을 빌려, ‘복수’를 넘어선 궁극의 승리,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길을 탐험하려 합니다.
두 가지 정의: 처벌할 것인가, 회복할 것인가?
우리가 익숙한 사법 시스템은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에 기반합니다. 이 관점은 잘못을 ‘법 위반’으로 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법을 어겼는가? 그는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이 시스템의 목표는 가해자를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의 창시자인 하워드 제르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관점은 잘못을 ‘관계의 파괴’로 보고,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다쳤는가? 그들의 필요는 무엇인가? 이 피해를 바로잡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Zehr, H.). 이 시스템의 목표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파괴된 관계와 공동체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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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위대한 실험: 처벌 없는 진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났을 때, 남아공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수십 년간 자행된 인권 유린의 가해자들을 모두 처벌하자니 끔찍한 내전이 불가피했고, 무조건 용서하자니 피해자들의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넬슨 만델라와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선택한 제3의 길이 바로 ‘진실화해위원회(TRC)’였습니다.
TRC의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인권 침해의 ‘진실을 완전하게 고백’하면, 그를 기소하지 않고 ‘사면’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처벌 없는 진실”과 “사면을 통한 화해”라는, 응보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말했습니다. “용서 없이는 미래도 없다. 하지만 용서는 망각이 아니다. 그것은 일어났던 일의 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Tutu, D.).
이 위대한 실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피해자의 가장 깊은 필요는 가해자의 처벌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겪은 고통의 ‘진실’이 공적으로 인정받고, 가해자의 진심 어린 ‘고백’을 듣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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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진실화해위원회’를 여는 법
이 회복적 정의의 원칙은 국가적 비극뿐만 아니라, 당신의 삶을 괴롭히는 개인적인 분쟁(가족 간의 갈등, 악성 이웃, 직장 내 괴롭힘)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의 승리가 마음의 평화를 주지 못했다면, 당신만의 ‘진실화해위원회’를 열어보는 용기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 목표를 재설정하라: 당신의 진짜 목표가 ‘복수’인지, 아니면 ‘상처의 치유와 관계의 재설정’인지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 중재자를 찾아라: 당신과 상대방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제3자(상담사, 존경받는 지인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감정적인 비난이 아닌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 ‘나’의 이야기부터 하라: “당신은 틀렸다”는 비난 대신, “나는 당신의 행동 때문에 이렇게 느꼈다”는 ‘나-전달법’으로 당신의 상처와 필요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십시오.
- 진실된 사과를 요구하고, 받아들여라: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해 보십시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증오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보다는 훨씬 더 생산적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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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당신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가해자를 위한 행위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용서는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복수심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과거의 상처가 더 이상 나의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나 자신을 위한 해방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고 선택하는 가장 주체적인 결정입니다.
법의 칼로 정의를 세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칼을 내려놓고, 진실과 용서라는 약으로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고 내면의 평화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궁극의 승리’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 회복적 정의가 모든 범죄에 적용될 수 있나요?
- 아닙니다. 회복적 정의는 모든 사법 절차를 대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가해자가 전혀 반성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대화를 원하지 않는 심각한 강력 범죄의 경우, 응보적 정의에 따른 처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회복적 정의는 주로 공동체 내의 관계 회복이 중요한 사건들(학교 폭력, 이웃 갈등 등)에서 보완적으로 사용될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 가해자가 진실을 고백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요?
-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의 자발적인 참여와 진실 고백을 전제로 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이를 거부한다면, 회복적 과정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경우, 당신은 법적 절차와 같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거나, 상대방의 참여 없이 ‘나 자신을 위한 용서’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용서가 너무 어려운데, 꼭 용서해야 하나요?
- 아닙니다. 용서는 의무가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이자 선택입니다. 누구도 당신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회복적 정의는 ‘용서’를 최종 목표로 삼기보다는, 진실을 확인하고 피해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과정’ 자체를 더 중시합니다. 용서는 그 과정의 끝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도, 혹은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한국에도 진실화해위원회가 있나요?
- 네, 있습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발생한 항일운동, 인권침해,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의 진실을 규명하여,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국민 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입니다.
- 이런 접근 방식이 너무 이상적으로 들립니다.
-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오와 복수의 악순환이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어렵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실용적인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