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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공의 비밀: 우리는 '원인'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당구공 A가 굴러가 당구공 B에 부딪힙니다. 그러자 B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광경이죠.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A가 B를 '움직이게 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나요?
아마 "경험으로 아는 거죠. 그런 장면을 수천 번은 봤으니까요"라고 답하실 겁니다. 정답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위대한 철학자 데이비드 흄 이래로 수 세기 동안, 그것이 정설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인과관계를 반복적인 관찰과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추론'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인과관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색깔을 보듯 '직접 보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여기, 심리학의 역사를 바꾼 두 개의 놀라운 실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발사되었다!" - 물리적 인과성을 '본' 알베르 미쇼트의 실험
1945년, 벨기에의 심리학자 알베르 미쇼트(Albert Michotte)는 이 오랜 철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단순하지만 천재적인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종이 위에서 검은 사각형 하나가 움직이다가, 다른 사각형과 접촉하는 순간 두 번째 사각형이 즉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습니다. (Michotte, A. (1945). The perception of causality.)
실험 참가자들은 머리로는 이것이 그저 그림일 뿐, 실제 물리적 충돌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과 뇌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번째 사각형이 즉시 움직이자,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것이 첫 번째 사각형에 의해 "발사되었다(launched)"고 묘사했습니다. 그들은 인과관계를 추론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인과성의 착각'을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경험이 아닌 본능으로서의 인과관계 지각
이 실험이 혁명적이었던 이유는, 우리가 인과관계 지각(perception of causality)을 이해하는 방식이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생후 6개월 된 아기들조차 이 움직임 순서에서 원인-결과 시나리오를 인지하고, 순서가 바뀌면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우리 뇌의 자동 조종 장치인 시스템 1이, 세상의 인과 패턴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인과관계를 학습하기 이전에, 이미 그것을 '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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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형들의 드라마: 의도성 지각을 '본' 하이더의 실험
알베르 미쇼트가 물리적 인과성의 비밀을 밝혀낸 것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44년,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와 마리안 지멜(Mary-Ann Simmel)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인과관계 지각이 단순한 물체에만 한정되는지, 아니면 '의도'를 가진 존재에게까지 확장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1분 40초짜리 짧은 흑백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습니다. 영상에는 큰 삼각형, 작은 삼각형, 그리고 원이 열린 문이 있는 집처럼 보이는 도형 주위를 움직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Heider, F., & Simmel, M. (1944). An experimental study of the perception of causality. Psychological Review, 51(4), 243–259).
하지만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단순한 도형의 움직임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 편의 완벽한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공격적인 큰 삼각형이 작은 삼각형을 괴롭히고, 겁에 질린 원이 나타나자 작은 삼각형과 힘을 합쳐 불량배를 물리칩니다. 그들은 문 주위에서 옥신각신하다가 폭발적인 결말을 맞이하죠."
자폐증을 앓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움직임에서 의도와 감정을 읽어내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 단순한 도형들에게 즉시 인격을 부여하고, 그들의 행동에서 특정한 의도와 성향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도성 지각(perception of intentional causality)'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보도록 설계된 존재입니다
미쇼트와 하이더의 실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뇌는 세상을 중립적인 데이터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원인과 결과', '의도를 가진 행위자'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 배후의 '이유'를 찾으려 하고, 복잡한 사회 현상에서 '악당'과 '영웅'을 구별하며, 심지어 주식 시장의 무작위적인 등락에서도 어떤 '의도'를 읽어내려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애초에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보도록, 그 속에서 인과관계 지각을 통해 원인과 결과를 발견하도록 설계된 존재인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세상을 보는 방식, 그 자체가 바로 이 놀라운 본능의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