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걸 알면서 왜?" 당신의 뇌를 속이는 '모세의 착각'의 정체

익숙한 맥락 속에 숨어있는 미세한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는 뇌의 비밀. 고대 석상처럼 생긴 사람의 머리에 미세한 균열이 있고, 그 틈으로 모세의 얼굴 뒤에서 노아의 얼굴이 엿보는 초현실적인 모습

당신의 뇌를 시험해볼 질문 하나

잠시 집중해서 아래 질문을 읽고 답해보시겠어요? 아주 간단한 질문입니다.

"모세는 각 종류의 동물을 몇 마리씩 방주에 태웠을까요?"

어떤 답을 떠올리셨나요? '두 마리씩'이라고 생각하셨나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리고 방금 아주 흥미로운 인지적 착각, 바로 '모세의 착각(Moses Illusion)'에 빠지신 겁니다.

정답을 알려드리죠. 방주에 동물을 태운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노아입니다. 너무나 명백한 오류인데, 왜 우리의 똑똑한 뇌는 이 함정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을까요? 이것은 당신이 성경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뇌가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정확성'보다 '편안함'을 선호하는 뇌: 시스템 1의 함정

우리 뇌의 보이지 않는 자동 조종 장치인 시스템 1은 '정확한 사실 확인'이라는 힘든 작업보다 '그럴듯하고 편안한 느낌'을 훨씬 선호합니다. '모세의 착각'은 바로 이 시스템 1의 작동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입니다.

뇌가 이 명백한 오류를 무시하는 데에는 몇 가지 체계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1. 강력한 맥락의 힘: 연상적 일관성

질문 속 '동물'과 '방주'라는 단어는 우리 머릿속에 즉시 '구약 성서 이야기'라는 거대한 맥락의 스위치를 켭니다. 이 맥락 안에서 '모세'는 전혀 낯선 인물이 아닙니다. 홍해를 가른 위대한 선지자죠. 비록 방주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성경이라는 큰 무대에서는 충분히 주연급 배우입니다.

우리의 시스템 1은 이처럼 서로 잘 어울리는 단어들의 조합, 즉 '연상적 일관성(Associative Coherence)'을 감지하면 깊게 생각하기를 멈추고 '인지적 편안함'을 느낍니다. "음, 다 아는 얘기군" 하고 넘어가 버리는 것이죠. 만약 "조지 부시는 방주에 동물을 몇 마리 태웠을까요?"라고 물었다면, 당신은 즉시 어색함을 느끼고 질문의 오류를 발견했을 겁니다.

2. '대충 맞는' 정보는 통과: 피상적 처리와 부분적 일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정보를 처리할 때 모든 세부 사항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가 그럴듯하면 넘어가는 '피상적 처리(Shallow Processing)' 경향이 있습니다(Erickson & Mattson, 1981). '모세'는 '방주' 이야기의 정확한 주인공은 아니지만, '고대의 위대한 성경 인물'이라는 더 넓은 범주에는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시스템 1은 이처럼 '부분적으로 일치'하는 정보에 매우 만족합니다. '모세'라는 이름이 질문의 의미적, 음성적 조건(비슷한 음절과 모음)과 어느 정도 들어맞자, 굳이 더 깊이 파고들어 '노아'라는 정확한 정보를 끄집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Park & Reder, 2004).

의미의 함정에 빠뜨리는 또 다른 질문. 추락하는 비행기 아이콘과, 생존자들 중에서 누구를 묻어야 하는지 묻는 물음표 그래픽

이런 착각, 또 있습니다

'모세의 착각'은 '의미론적 착각(Semantic Illusion)'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이런 질문은 어떠신가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생존자는 어디에 묻어야 할까요?"

많은 사람이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합의에 따라' 같은 답을 고민하지만, 핵심은 '생존자'는 묻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추락', '국경', '묻다'와 같은 단어들이 만드는 비극적인 맥락에 빠져 '생존자'라는 명백한 오류를 놓치게 되는 것이죠.

일상 속에 숨어있는 '모세의 착각'을 경계하라

'모세의 착각'은 단순히 재미있는 퀴즈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우리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가짜 뉴스, 익숙한 용어로 포장된 허위 광고, 우리의 기존 신념과 일치하는 왜곡된 정보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을까요?

이 착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적으로 시스템 2를 깨우는 것, 즉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정보일수록, 한 번쯤은 "정말 그런가?" 하고 되묻는 비판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뇌는 효율성을 위해 기꺼이 진실을 외면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오늘부터 당신의 '모세'는 누구인지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