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는 평등하다" 배웠는데… 왜 '남성의 책임'만 강요받나요?

우리는 교과서에서 '남녀는 평등하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군대, 결혼 비용 등 전통적인 '남성의 책임'을 요구합니다. 이 시대적 모순이 2030 남성 역차별과 분노의 진짜 원인입니다.

우리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운 첫 세대입니다

저는 200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기억 속 학교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똑같은 기준으로 경쟁했으며, ‘남녀는 평등하다’는 말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습니다.

실제로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고, 제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부터 우리 교과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우고 ‘양성평등’을 핵심 가치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대통령, 여성 CEO, 여성 과학자. 우리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하게 응원했습니다. 한반도 역사상, 남녀가 동등한 인격체이자 경쟁 상대라는 것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체화한 첫 세대였던 셈이죠.


하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다른 ‘청구서’를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평등이라는 이상을 품고 사회에 나왔을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사회는 우리가 배운 것과는 전혀 다른, 아주 오래된 규칙들을 들이밀며 우리에게 ‘남성의 책임’이라는 청구서를 내밀었습니다.

평등의 시대에 홀로 짊어진 ‘국방의 의무’

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병역 의무’였습니다. ‘남녀는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국방의 의무는 오직 남성에게만 부과되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업과 경력은 강제로 중단되었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 속에 묻혔습니다. 이 경험은 많은 2030 남성들에게 ‘공정성’에 대한 첫 번째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남성에게 더 많이 요구되는 경제적 책임

사회에 나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균열은 더욱 커졌습니다. 분명 여성들도 동등한 경제 주체로 활동하는 시대인데도, 데이트 비용부터 결혼 비용, 주택 마련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남성에게 더 많은 경제적 책임을 기대하는 문화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58.4%가 ‘데이트 비용을 남성이 더 많이 부담하는 현실’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한국리서치, 2021). 이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 평등이라는 가치관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근본적인 박탈감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역차별’ 이전에 ‘시대적 모순’의 문제입니다

2030 남성들의 분노를 단순히 ‘여성에 대한 혐오’나 ‘기득권을 잃는 것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바로 시대적 모순입니다.

그들은 ‘평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약속을 믿었지만, ‘남성의 책임’이라는 낡은 시대의 청구서를 동시에 요구받고 있는 세대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과 혼란, 그리고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깊은 소외감입니다.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정(recognition)’과 ‘재분배(redistribution)’를 요구하고 있으며, 사회가 이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때 갈등은 증폭됩니다."

– The New Politics of Recognition and Redistribution(Taylor & Francis Online, 2022)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이기적인 불평’으로 치부하고 더 큰 갈등의 불씨를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모순을 인정하고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설 것인지 말입니다.

이 길고 아픈 성장통을 끝내기 위한 첫걸음은, ‘누가 더 힘든가’를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우리가 배운 세상은 왜 현실과 다른가’라는 질문에 우리 사회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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