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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왜 당신의 대출을 거절했는지 스스로도 모른다
신용등급도 나쁘지 않고, 직장도 안정적인데 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되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은행에 이유를 묻자, 상담원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죄송하지만, 저희도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시스템(알고리즘)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입니다."
인사팀에 채용 면접 탈락 이유를 묻자, "AI 면접 결과 점수가 기준에 미달했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어떤 기준으로, 왜 그런 점수가 나왔는지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간이 아닌, 블랙박스 속 '알고리즘 판사'에게 우리의 인생을 심판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공정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하니 객관적일 것이라고요. 하지만 바로 그 믿음이, 우리를 더 교묘하고 심각한 '디지털 차별'의 함정으로 빠뜨리고 있습니다.
1막: 코드에 스며든 편견, 알고리즘은 중립적이지 않다
알고리즘은 진공 속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먹고 자랍니다. 만약 우리가 알고리즘에게 편향된 데이터를 먹인다면, 알고리즘은 그 편향을 충실하게 학습하고, 심지어 증폭시키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알고리즘 편향(Algorithmic Bias)'의 무서움입니다.
실제 사례: 아마존의 '여성 차별' 채용 AI
세계 최대 기업 아마존은 이력서를 분석해 최고의 인재를 추천하는 AI 채용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AI에게 과거 10년간 채용된 직원들의 이력서를 학습시켰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AI는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되거나, 여자 대학 출신 지원자에게 감점을 주는 명백한 성차별적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과거 데이터에 남성 위주의 채용 패턴이라는 '편견'이 숨어있었고, AI는 그 편견을 '성공의 법칙'으로 학습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금융 분야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로 대출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디지털 레드라이닝(Digital Redlining)'은 이미 현실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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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블랙박스를 열 권리, '설명가능 AI(XAI)'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투명한 '알고리즘 판사'의 판결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왜?"라고 물을 권리가 있습니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더 이상 은행 창구의 직원이 아니라, 그들 뒤에 숨은 불투명한 알고리즘 그 자체입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설명가능 AI(Explainable AI, XAI)'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는 AI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변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기술이자, 법적 권리입니다(Barredo Arrieta, A., et al., 2020).
당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
만약 금융회사가 알고리즘을 근거로 당신의 대출이나 카드 발급을 거절했다면, 당신은 이렇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의거하여, 귀사의 신용평가 및 대출 심사 과정에 사용된 알고리즘의 주요 변수와 그 판단 기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이 요구는 기업에게 그들의 '블랙박스'를 열도록 압박하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비록 현재 기술 수준과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 논리 때문에 완벽한 설명을 듣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러한 요구가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투명하고 공정한 알고리즘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금융분야 AI 알고리즘의 공정성 확보 방안 연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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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알고리즘 판사에게 질문을 던져라
AI 시대, 우리는 전례 없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편견을 학습하고, 그 편견을 '객관적인 데이터'라는 가면 뒤에 숨겨 우리를 심판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권력 앞에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당신은 무슨 근거로 나를 판단하는가?"라고 말입니다. 당신의 대출을 거절한 것이 은행원이 아니라 알고리즘이라면, 당신은 그 알고리즘과 싸워야 합니다.
알고리즘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그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주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에 우리의 권리를 지키고, 더 정의로운 기술을 만들어나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